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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기엄금 Nov 08. 2023

나이 서른에 만난 산타클로스

어린 시절,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사치였다.


억척스럽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림을 이끌어가시던 어머니로부터 크리스마스는 커녕 생일에도 선물 같은 건 받지 못했다. 여기서 혹시나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오해는 금물! 물론 우리 부모님은 내게 무조건적인, 분에 넘치는 큰 사랑을 주셨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당시 어린 나에게 중요한 건 선물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물론 나와 각각 7, 6살 차이가 나는 누나와 형아는 지금도 본인들보다 내가 훨씬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았다며 부모님 앞에서 수시로 불만을 제기하며 응석을 부리지만, 나이가 서른을 넘은 후에도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약간의 결핍으로 기억되었다. 마치 어린 시절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나이키 운동화를 지금 집에 쌓아놓는다 한들, 어린 시절의 가난했던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결혼을 하고 우리의 집에서 아내와 처음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는 많이 들떠 있었다.

퇴근 후 함께 트리를 장식하고, 함께 장을 보고 저녁상을 근사하게 차렸으며 가볍게 와인을 곁들였다. 그 소중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게.

 

크리스마스 당일, 푸욱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맡에 작은 종이가방이 눈에 들어와 있었다. 어리둥절해서 가방을 열어본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 안에는 작은 선물상자와 편지가 있었다.

"OO가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착한 아이라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왔어요. 메리크리스마스."


편지를 다 읽기도 전에 눈에서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무언가가 자꾸 흘렀다. 글자를 읽는데 시야가 자꾸 번져서 편지를 들고서 한참이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고, 아내는 말없이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내 나이 서른, 사랑하는 아내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산타클로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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