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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주는 사랑을 하고 싶어

by 새벽숨


사랑이 드러나는 방식이 다양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작동한다. 하나는 걱정, 다른 하나는 아낌. 같은 사랑인데 결이 참 다르다.


걱정하는 사랑은 상대가 다칠까봐, 상처 받을까봐, 고생할까봐 불안해한다. 불안은 불안을 안겨 준 대상을 원망하게 하는데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원망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분명 사랑에서 기인한 것인데 사랑을 사랑답지 못하게 만드는 불순물이다.


아껴주는 사랑은 줄 때도 받을 때도 따뜻함이 남아 편안하다. 다칠까봐, 상처 받을까봐, 고생할까봐 보듬어주고 안아준다. 많이 보듬고 안아주는 것은 부작용이 없다.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게 한다.


나는 걱정하는 사랑에 익숙해서인지 걱정되면 사랑인 줄 알았다. 물론 관심이 없으면 걱정도 안 되겠지만 그래도 사랑을 줄 때 지금보다는 편안한 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남편이 날 사랑해줄 때와 같이.


그의 사랑은 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 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그는 내가 아닌 다른 이상을 만들지 않는다. 나를 나로서 사랑해줄 뿐이다. 난 그저, 그를 보면 내가 편안한 것처럼 그도 나를 보면 편안했으면 해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내 사랑은 종종 남편을 다짐시킨다. ‘아내를 불안하게 만들면 안 되겠다’라는 다짐. 예전에는 남편의 이러한 결단을 '날 사랑하기에 기꺼이 꺼낸 스스로와의 약속'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 생각보다 많은 영역에서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이 남편과 연관되어 있지만 결국 그가 직접 해결해줄 수 없는 종류일 때도 많았다. 갖은 노력에도 내 걱정이 줄어들지 않는 걸 보며 그는 때때로 긴장감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이런 현상을 보니 남편이 내게 전염되는 것보다 내가 남편과 동화되는 것이 우리 가정에 훨씬 긍정적일 테다.

그런데 내가 변할 수 있을까.


걱정과 불안이 많은 본성이 다스려질 수 있을까.


걱정은 본성을 따르지만 사랑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사랑은 실로 대단하여 사람을 바꾸기도 하니까. 내 사랑이 남편의 것과 닮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나도 아껴주는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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