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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Mar 14. 2024

너의 백일 때 다짐을 이어가보려 한다


이제 29개월에 접어드는 로디의 백일 영상에 들어간 글이다.




열 달간 뱃속에 있던 로디가 엄마 품에 안겼을 때

너의 무게와 온도가 느껴지면서 엄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단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엄마가

조그마한 너를 처음 안은 순간부터 이전에 없던 감정을 느끼고 있어


품에 안긴 네가 만들어내는 모든 감각이

내게 더 나은 엄마를 꿈꾸게 해


그래서 너무 행복하지만

가끔은 이런 나를 보며 혼란스럽기도 해


널 향한 걱정과 집착이 점점 지나치다

너를 옭매지 않을까

그래서 너의 마음을 듣지 못하고

엄마의 마음만 말하지 않을까


놀랍겠지만 엄마는 벌써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아


안 그래도 세상살이가 쉽지 않을텐데

너가 태어나자마자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조차

쉽게 해결해주지 못하는 엄마였어


수유시간을 조절하고

너가 스스로 잠들길 기다리는 동안

단순히 엄마의 욕심일까, 너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과정일까

수도 없이 생각해봤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


담담하게, 용감하게 널 키워보려고

열 달이나 마음을 단련시켰는데

며칠만에 무너지는 엄마 모습에

어쩌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


앞으로도 엄마가 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엄마 때문에

어제처럼, 또 오늘처럼 많이 고생할지도 몰라


너가  살아가는 내내, 어떻게 해도 부족한 엄마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보지 않을래?


로디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이전보다 다채로운 매일을 살고 있어


너에게 한참 크던 욕조가

어느새 너로 꽉 채워질 정도로 작아졌고

젖병도 잡고

기도손을 하기도 해

카시트를 타고 3시간 거리의 할머니댁에 가보고

유모차를 타고 겨울바다도 느껴봤지


그리고 마침내

백일사진을 찍는 날이 왔어


이 모든 순간을 눈과 몸으로 기억하고 싶은데

살면서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잊을테니

영상으로라도 너를 남겨두려 해


아이가 태어날 때 받는 스트레스는

아이를 낳는 엄마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많대


로디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모든 고통을 용감하게 이겨냈단다


엄청난 인내력과 담대함이

이미 네 안에 있다는 걸 잊지 마


너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엄마만큼

로디도 엄마로 인해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길


매일 널 아끼고 보호하며 사랑할게




그때의 다짐대로 로디로 인해 행복하고 로디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는 걸까. 매일 로디를 아끼고 보호하고 사랑한다던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 게 맞을까. 저 깊은 데서 올라오는 미안함은 어떤 의미일까.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이제는 나도 아이처럼 성장하고 싶다고. '엄마', '어른'이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미성숙한 모습을 들키기 일쑤다.


내 체력 고갈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닳아버린 마음 탓에 아이에게 과하게 감정을 쏟을 때도 많다. 자기 비관과 미안함도 반복되면 그 진실성이 의심된다. 난 정말로 아이에게 미안한가. 마음 속 깊이 이 자식은 내 소유물이라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닌가.


엄마가 무서운 마녀로 변하고 있는 순간에도 잠은 엄마와 자겠다고 우는 로디.


얼른 자자며 아빠에게 이끌려 가면서도 울음 섞인 '엄마 사랑해요'를 외치는 로디.


아이는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데 나는 늘 제자리걸음이다.


아니, 후퇴하고 있는지도.


아이와의 추억을 적을 때면 꼭 튀어나오는 지겹고도 거짓같은 반성글. 그래도 다시 없을 로디와의 시간이라 어떤 형태로든 나중에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조금 미화되고 과장될 수 있어도 최대한 꾸밈없이 복원하여 써 내려가고 싶다.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나의 로디를.


로디의 성장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어른 엄마'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이랬던 넌 곧 9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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