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좌절을 지켜보는 일은 달갑지 않다.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아이에게 찾아온 거절감과 실패는 어른이 겪는 좌절보다 훨씬 큰 불행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
지인들과 모임에서 로디는 두 살 형이 의자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형에게 살금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던 남편은 로디에게 “형한테 도와 달라 해볼까?”라고 제안했다. 로디는 형에게 작은 목소리로 “형아, 의자 도와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는 로디는 또래 아이나 형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쑥스러움과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는 로디를 보니 괜히 마음이 찌릿했다.
내가 관찰한 장면은 여기까지. 나중에 남편에게 들어보니 형은 “동생이랑 안 놀거야.”라고 대답했단다. 그래서 남편이 대신 로디와 놀아주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다 서운했다.
나는 아이에게 ‘거절당할 여지’가 있는 일은 제안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관대한 편이니까 로디에게 삼촌 혹은 이모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해보라는 말은 한다. 하지만 또래 친구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테고 나는 친구들과 지내는 로디의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로디가 친구에게 거절당할까봐 두렵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달리 로디에게 다른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 해보자고 권유한다. “같이 가서 놀아 봐.”, “친구한테 인사해 봐.”, “친구한테 과자 좀 나눠줘 봐.”
그러고 보니 남편은 내게도 그런다. 틈만 나면 친정 부모님께 저녁을 같이 먹자고, 근교에 같이 놀러 가시자고 연락해보라 한다. 난 우리 부모님은 그런 걸 안 좋아한다고 차단시켰다. 아빠는 내가 (잘 하지도 않지만 가끔은) 권유하는 사항들에 ‘안 한다’, ‘피곤하다’ 등으로 거절하는 편이다. 요즘은 일이 힘드셔서 거절의 횟수가 더 많아졌다. 난 제발 남편에게 우리 아빠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찔러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부모님은 그런 제안을 좋아하셨다. 정말 피곤해서 거절하더라도 남편이 건네는 손을 고마워 하셨다. 남편은 종종 누군가에게 제안을 하고 그만큼 거절도 많이 당한다. 하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함께 하지 못한다면 혼자서 즐기고, 거절에 앙갚음 하지도 않고, 다음에 또 제안을 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새로운 추억이 하나 생기고 그는 그걸로 만족한다.
나는 계속된 거절을 겪으면서도 굳이 용기를 내는 남편이 신기했다. 나에겐 거절감이 좌절로 연결되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나보다. 그에게 제안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만드는 진취적인 행동이며 열 번의 제안 중 한 번이 받아들여져 이전에 없던 지식을 얻거나 추억을 만들면 아홉 번의 거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나의 로디는 아직 친구들에게 선뜻 나서지 못하는 편이다. 보통 어른들은 자신을 예뻐하고 자신도 예쁨 받는 것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삼촌들에게 본인의 예쁨과 귀여움을 어필하는 데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대등한 관계인 또래들에게는, 특히 낯선 친구에게는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다. 언니, 오빠, 동생은 편하지만 정작 동갑내기 친구는 많지 않은 나라서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설마 이런 성향도 유전적인 요소가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아빠 이야기를 듣고 용기내어 행동한 것이 참 대견했다.
사랑하는 로디.
아직은 친구에게 도와달라거나 같이 놀자는 말을 하는 것이 어렵지?
친구가 같이 놀기 싫다고 하면 엄마도 부끄러워.
그런데 그 친구가 싫다고 해서 다른 친구도 로디랑 노는 게 싫은 것은 아니야.
또 그때 로디랑 같이 안 논다던 친구도 지금은 로디랑 같이 놀고 싶어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로디.
한 번 거절당했다고 ‘두 번은 없는’ 로디가 되지는 않길 바라.
아빠처럼 거절을 좌절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만 더 손을 내밀어 봐.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최고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조금은 용기 내어 새로운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진취적인 로디가 되길 소망해.
로디가 닮아갈 엄마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