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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Mar 28. 2024

친구 무는 아들


로디가 친구를 물었다. 그것도 살도 없는 등을.


작년, 매일같이 집에서 이름을 얘기하는, 아마 절친한 듯한 여자 아이 '아리' 팔을 물었다. 선생님 말로는 놀이터에서 로디가 놀고 있던 기구에 그 친구가 올라타서 그런 것 같단다. 그래서 연고와 편지를 준비해 사과 인사를 전한 적이 있다.


이후 로디는 종종 "로디가 아리 앙 물었어. 안 돼" 라고 말한다. 반복적으로. 반 년이 넘도록 그러길래 로디가 제대로 알고 있구나, 다시는 친구를 물지 않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같은 반 남자 아이 '동동이'를 물었단다. 선생님 말로는 로디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그 친구가 건드렸단다.


장난감은 친구랑 같이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한다고, 맛있는 건 친구와 나눠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수없이 얘기했다. 단호하게, 무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그 원칙을 지켜서 여러 번 얘기해도 가끔 만나는 또래에게 장난감이나 먹을 것을 두고 다투려는 행동이 보여 결국 팔을 세게 붙잡아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무섭게 하여 행동을 멈추는 건 그때 뿐. 로디에게 영역 침범은 아직 참을 수 없는 단계인가보다.


하원 즈음 로디에게 등을 물린 ‘동동이’의 부모님이 나와 연락을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이날 몸이 힘들어 연차를 썼는데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받아 집까지 걸어올 생각에 내내 설렜었다. 그런데 집 앞에서 공사를 하고 있어 로디와의 산책은 포기하고 선생님께 아이를 버스로 하원 시켜달라고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이 머뭇거리시다 알겠다고 하고 끊으시길래 이상하다 싶었다. 곧바로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로디와 동동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린이집에서 말씀드리려 했는데 못 오신다고 하여 전화로 말씀드린다고.


전화를 끊고 아이 하원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선생님으로부터 동동이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받고 문자를 남겼다. 편한 시간대 알려주시면 전화 드리겠다고. 답장이 왔는지 20초마다 확인한 것 같다.


멀리서 보이는 노란 버스. 아이를 마주했다. 로디는 외할머니가 아니라 엄마가 나왔는데도 놀라진 않고 다소 차분한 모습으로 웃어주었다. 놀이터에 가자고 떼쓰지도 않았고 그냥 엄마 손을 잡고 혼자 재잘거렸다.


집으로 올라가는 동안 로디에게 어떤 질문을 어떤 목소리와 어조로 건네야 할지 생각했다. 능동적으로 생각을 했다기보다 여러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혔다.


도어락을 열었고 아이는 신발을 벗은 후 현관 앞에서 가방, 외투, 양말을 차례차례 벗었다. 나는 아이를 들어 손을 씻기고 쇼파에 가서 아이를 마주보고 앉았다.



로디,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 했어?


띠그띠그띠그했어. (놀았다는 표현.)


오늘 무슨 일 없었어?


네.


오늘 친구랑 싸우지 않았어?


안 싸웠어.


선생님이 그러던데 로디가 동동이 앙 물었다던데.


안 물었어.


그럼 선생님이 거짓말하신거야?



로디, 동동이 앙 물었어?


네.


왜?


동동이가 뭐했고 뭐했고 뭐해서 로디가 앙 물었어. (자기만의 단어로 설명을 하지만 다 알아듣진 못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때리거나 앙 무는 건 아주 나쁜 행동이라고, 친구와 같이 지내려면 속상해도 말부터 꺼내는 거라고 일렀다. 단호하게, 무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간식을 챙겨주고 놀이를 잠깐 하는 중에도 생각날 때마다 물어보았다.



(아이가 놀던 장난감을 가져가며) 자, 친구가 이렇게 가져가면 어떻게 해야 돼?


(아이가 먹던 간식을 하나 집으며) 자, 친구가 로디 먹을 거 가져가려 하면 어떻게 해야 돼?


때려야 돼? 앙 물어야 돼?


'아니' 라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계속 물었다.



아이는 자기가 잘못한 걸 안다. 그래서 크게 반항하지 않고 의도된 답을 이야기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또 헷갈린다. 로디가 과연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을까. 그럼 다음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말이 느린 편은 아닌데 왜 몸부터 나갈까.


어떤 방식으로, 몇 번을 알려줘야 아이의 이런 모습을 교정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무는 것이 습관이 안 되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날 저녁, 동동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알고 보니 로디가 그 아이를 문 게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은 선생님이 빨리 알아보셔서 바로 제지했기에 큰 상처는 없어서 그냥 넘어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좀 심한 것 같다고, 주의를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로디가 종종 친구들에게 힘을 쓴다고 하셨고 그때마다 로디가 무슨 일을 쳤구나 싶어 '이러한 상황에선 이렇게 행동해야 돼'라며 상황을 만들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동동이를 문 게 처음이 아닌 줄은 몰랐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었다. 얼마나 놀라셨냐고, 너무 죄송하다고, 제대로 다시 훈육하겠다고 전했다.


담임 선생님은 또 무슨 죄인가. 동동이 부모님께 ‘제가 제대로 못 봐서 죄송하다’ 하셨을 것이고 나에겐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셨다. 나 혼자 봐도 애가 다치는데 선생님 혼자 7명을 보면서 누구도 안 다치게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처음 동동이를 물었던 걸 나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선생님 혼자 해결하셨던 사건이 비단 한 번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로디가 친구한테 힘을 쓰려고 했는데요’라고 간접적으로 일렀던 때가 얼마나 있었던가. 그때마다 로디는 친구를 아프게 했을까. 마음이 복잡하다.


친구 부모님께 연고와 편지를 보낸 것이 두 번째. 이 일이 반복되면 자진 퇴소해야 할 테다.


다음 날, 조퇴를 하고 어린이집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원장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평소 로디가 어떨 때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또 엄마인 나는 얼마나 더 자주, 엄격하게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지 물었다. 등원할 때마다 이야기를 하는 게 옳은지, 상황을 만들어서 연습을 시켜야 하는 건지 등.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결론은 반복해서 얘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로디가 또래와 어떻게 지내는지 잘 알아야 구체적으로 훈육이 가능할 것 같아 참관이 가능하냐고 여쭤보니, 가능은 하지만 몰래 와서 보기에는 구조가 적합하지 않아서 내가 원한다면 현장학습을 갈 때 멀리서 지켜보시는 것도 가능하다 하셨다. 조만간 키즈카페 일정이 잡히면 한 번 가보려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생각했다.


로디 앞에서 남편을 물거나 때리는 모습을 장난으로라도 보이지 않기로.


로디에게 화가 나고 속상할 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알려주기로.


그런데 사실 이건 나에게도 어려운 영역이다.


화날 때 입 다무는 버릇부터 고쳐야 하는 엄마라 고민이 깊어진다.




사랑하는 로디.


바람에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무섭다며 엄마한테 달려오는 너라서

친구가 옆에 오는 것이 무서운 걸까?


그런데 그 어떤 경우에도 친구를 때리거나 깨물어서 아프게 하면 안 돼.

로디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친구가 가져가도,

로디가 먹으려던 과자를 친구가 집어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친구를 아프게 해선 안 돼.


그 전에 먼저 말을 해봐.

“내가 할 거야!”라고.

“내가 할 거야!”라고 말해도 친구가 다가온다면 그땐 놓아줘.

어린이집 장난감이나 음식은 함께 하라고 주어진 거야.

같이 쓰는 거고 같이 먹는 거야.


그런데 혹시 로디 장난감이나 과자라도 친구랑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세상을 살아갈 때 힘이 되는 친구가 로디 주변에 많아질거야.

엄만 지금도 학생 때 사과 반쪽 나눠 먹었던 친구랑 15년째 힘을 주고받아.


엄마, 아빠는 영원히 로디 옆에 있을 수가 없으니까

로디가 살아가는 내내 로디 편인 사람들이 가득했으면 좋겠어.

이름처럼 세상에 선한 빛을 내는 아이로 살아가길 소망해.



Unsplash @Zachary Kadol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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