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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새벽숨
Apr 05. 2024
아들에게 뽀뽀세례 받다
그저께 먹었던 반찬이 상했는지 남편은 아래로, 나는 위로 다 쏟아냈다.
체면 차릴 여력도 없이 회사
화장실에서 세 번 토해내고
택시에 실려 겨우 집에 도착한 나는 쇼파에 기대어 쓰러져 앉았다.
어제 나에겐 퇴근 후 30분 단위로 계획이 있었다.
남편 생일상 차리기.
오늘 생일인 남편에게 적은 찬이지만 정성 들여 생일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미역국, 잡채는 하루 전날 완성해두고 갈비는 양념에 재워두려 했다. 요리에 서툰 내가 이 과정을 해내려면 3시간은 족히 걸릴 테니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의 생일 전날인 어제 우리 부부는 장염에 걸렸다. 나는 요리할 힘이 없었고 그는 먹을 힘이 없었다.
왜 하필 오늘 아파야만 하는가.
왜 먹지도 않던 반찬을 이제야 꺼냈는가. (안 먹었으니 상했겠지.)
왜 우리 남편은 올해 생일상도 온전히 받지 못하는가.
속상하고 짜증이 밀려오는데 그와 상관없이 눈치없는 음식물과 신물이 불쑥불쑥 입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친정엄마는 내가 화장실에 편하게 달려갈 수 있게 로디가 나에게 오지 못하도록 어르고 달래어
장난감으로 유도했다.
하지만 로디는 하루종일 떨어져 있던 엄마를 만난 것이 너무 반가웠나보다.
침대 쿠션에 기대어 있는 나에게 올라타더니 배 위에 앉아서 "방방, 봉봉" 거리며 너무 해맑게 엄마 말을 타는 것 아닌가.
다행히 조금 전 한 차례 쏟아냈기에 대참사는 면했지만 로디는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거실로 갔다. 방 너머 소리를 들어보니 친정엄마는 로디에게 "엄마, 아야해. 엄마 쉬어야 돼."라며 침실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듯했다.
잠시 조용한 환경에 놓이자 몸에 힘이 풀리고,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그때,
음?
로디가 내 입술에 뽀뽀를 했다.
아이에게 부모 충치균이 옮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에 뽀뽀하는 건 꾹 참는 편이다. 사실 로디도 입으로 뽀뽀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요샌 볼에 뽀뽀를 해도 손으로 닦아낸다. 오늘로 30개월이 된 아가는 벌써부터 엄마 뽀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로디가 엄마 아야한다고 입술에 쪽 뽀뽀를 해주다니.
내가 당황하여 가만히 보고 있으니 로디가 볼에, 입술에 여러 차례 뽀뽀를 퍼붓는 것 아닌가.
처음 받아보는 아들 뽀뽀세례에 행복에 겨워 벙찌면서도
오늘 여러 번 음식물을 쏟아 낸 입술인데 아이에게 큰 해가 될 것 같아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랬더니 로디가 씩 웃으며
엄지를 들고는 "감동~"이란다.
("감동"은 로디가 엄마, 아빠에게 칭찬받을만한 일을 했을 때 스스로가 뿌듯하여 튀어나오는 말이다.)
화답으로 로디 엄지에 내 엄지를 찍으니
내
목을 감싸
안아주었다.
평생 못 잊을 기억임을 직감하며 나도 로디를 꼭 안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로디가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알구나.
엄마에게 뽀뽀를 하면 엄마가 감동받고 무장해제될 것을 알고 있구나.
난 정말 인간 로디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맞구나.
요즘 로디에게 건네는 말과 감정이 다 튕겨나오는 듯해서 아이와 소통이 가능한 관계가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미 내 마음과 소원까지 다 알고 있는 로디의 행동에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그 여파는 오랫동안 뭉근하게 남아있을 테다.
사랑하는 로디.
어제 엄마가 화장실에서 토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던 너에게 민망해서
엄마가
"나가,
로디."라며 화장실 문을 쾅 닫았지?
하루종일 떨어져 있던 엄마가 로디 애교와 장난을 다정하게 받아주지 못했는데도
로디는
엄마가 아픈 줄 알고 뽀뽀를 해주더라고.
엄마, 정말 잊지 못할거야.
평생 못 잊을거야.
점점 로디가 엄마와 뽀뽀하는 걸 창피해하고
엄마가 뽀뽀하면 손바닥으로 볼을 벅벅 닦아낼 때가 오겠지? (사실 지금도 그래, 넌.)
로디가 그 사랑을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에게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기한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순간을 즐기려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많은 엄마인데
너와 함께 하면서 이 순간 누려야 할 행복을 온전히 누리려 노력 중이야.
로디와의 매순간을 만끽하는 데에 충실하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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