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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호 Jan 12. 2024

7일차-1. 좋은 말씀 전해줄게요

100% 진심이 느껴졌던 어느 아주머니의 전도와 응원

무사히 대피소로 하산하고 나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이곳에선 정상도 찍고 풍경도 봤으니,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첫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7시 반 무렵.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두 가지가 뒤섞였는지 만에 닿을 듯 낮게 깔려 묘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경을 감상하며 이른 아침을 먹고 버스가 서는 삼거리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몇 분 쯤 기다렸을까. 정적만이 감돌던 도로의 왼쪽 끝에서 전광판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버스가 보였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해 문이 열리고, 내 짐을 싣는 걸 도와주기 위해 기사님이 내렸다. 첫날 탔던 버스의 기사님과 똑같은 분이었다. 나는 괜한 반가움이 터져나왔다. 기사님이 나에게 영어로 어디로 가냐고 질문을 하는데, 나는 그 말을 어디에 머물렀냐로 해석하고 말았다. 내가 저 산 꼭대기에 있다가 내려왔다고 답했으니 당연히 제대로 말이 이어질 리가 없었다. 기사님도 당황하셨는지 “나르비크에 간다고요?”라고 반문하자, 나는 그제야 아차 싶었고 화들짝 놀라 아니라고 했다. 나르비크는 로포텐으로 들어오는 또 다른 관문으로 서쪽 끝에 있는데, 버스의 시종점이자 300km 넘게 떨어진 아주 먼 곳이다. 거기로 가면 심각하게 곤란해진다. 나는 레크네스에 가야 한다고 기사님께 다시 전하면서 속이 왠지 화끈거렸다. 


“일요일의 아침의 레크네스는 참 고요하죠?

“네,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버스는 천천히 30분을 달려 레크네스에 도착했다. 버스의 유일한 승객이었던 나를 정류장에 내려주며 기사님이 꺼낸 한 마디였다. 레크네스는 3500여 명이 거주하는 곳으로, 로포텐 제도를 이루는 많은 마을들 가운데 아주 큰 편에 속하는 곳이다. 제법 도시 분위기가 나는 곳이지만, 일요일엔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는다. 연다고 해도 10시는 되어야 한다. 굳이 급할 필요 없고, 급하지 않아도 되는 오전 8시의 레크네스는 유령 도시처럼 조용했다.

고요함을 넘어 적막했던 일요일 아침의 레크네스


오늘은 레크네스에서 하우클란 해변으로 이동해 하루를 머물 계획이다. 거리가 꽤 있기 때문에, 필요한 식료품을 미리 구해가야 했다. 다행이 일요일에 여는 곳중에 마트도 있었다. 오픈 시간인 10시까지 무작정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의 칸막이와 의자는 좋은 쉼터가 되어주었다.


10시가 되어 마트에 가니 어째 문은 닫혀있고 불도 꺼져있었다. 분명히 간판에도 열 시 부터 연다고 되어 있는데. 혹시나 하며 조금 더 기다렸지만, 도저히 영업을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먹이를 눈앞에서 놓친 생쥐마냥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가, 저편에서 마트를 향해 걸어오는 한 어르신이 보였다. 나는 곧장 인사를 하며 물어봤다. 답을 듣고 나니 머리를 따악하고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일요일엔 본 건물 옆에 있는 별도의 건물에서 영업을 한단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마트로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다면, 무작정 기다리다가 겨우 발견했다던지 아니면 발걸음을 돌려 다른 가게를 찾아봤을 것이다. 다행히 그 어르신 덕분에 순조롭게 식재료를 살 수 있었다.

레크네스의 대형마트, REMA 1000


이제 문제는 하우클란 해변까지 가는 것이었다. 레크네스에서 해변까지는 약 9km. 주 도로인 E10을 따라서 절반 정도를 가면 갈라지는 작은 도로가 나오고, 그 길을 계속 따라가면 닿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구간엔 평일에만 버스가 다닌다는 것이다. 주 도로를 따라서는 매일 버스가 다니지만, 그곳까지는 휴일에는 수요가 없으니 다니지 않을 터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걸어서 가거나, 차를 얻어 타는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히치하이킹을 하는 게 당연히 편하고 빠른 방법이지만, 여지껏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며,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람베르에서 인도에 서서 두꺼운 종이에 목적지를 쓰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여행자를 얼핏 보았는데, 나는 도무지 할 생각도, 용기도 들지 않았다. 아마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으랴. 


그렇게 나는 선택지 하나를 쉽게 없앤 후, 어려운 길을 택했다. 흡사 훈련소에서 행군을 하던 기분이었다. 그래도 걸어갈만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마음과 달랐다. 피로가 많이 누적되었기 때문일까. 나이를 먹으며 몸이 굳은 것도 있기 때문일까. 배낭 무게와 거리가 두 배였던 훈련소 행군을 어떻게 완주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다행인 점은, 차도 옆에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따로 있었다는 것이었다. 차를 탔다면 보지 못했을 섬의 경치를 보며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갔다. 


큰 도로를 지나 해변으로 이어지는 얕은 산길을 앞두고 집이 몇 채 모여있는 작은 마을을 걸어가는데, 누군가 크게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힘들면 잠깐 들어와 차나 커피 한 잔 하면서 쉬었다 가요.”


몸집이 작은 청년이 자기 뒤통수까지 높게 솟은 배낭을 메고 걸음을 옮기는 게 힘들어 보였던 걸까. 나는 무척이나 감사했지만, 꾀죄죄한 꼴로 낯선 이의 집에 들어가 쉬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없었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다. 내가 조심스럽게, 정중히 거절을 하자 아주머니는 잠시 기다리라며, 성경책 한 권들 들고 나오시더니 성경의 내용을 내게 전파해 주었다. 뜬금없는 전개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아주머니는 평온한 표정과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 내용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새 아주머니의 전도에 빠져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마지막엔 내가 해변에 간다고 하니 응원의 말을 하며 글자가 새겨진 돌멩이를 건네주었다. 


우리나라의 길거리를 걷다가 ‘인상이 참 좋아보이세요’, ‘선해보이세요’라며 다가오는 일명 '도를 아십니까' 무리와 교회에서 나왔다며 ‘하나님 아버지는 있는데 어머니는 왜 없을까요’라는 등의 내용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마주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썩 달갑진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또 쉽게 못 뿌리치고 가는 성격이라, 그들의 눈에는 호구나 마찬가지다. 뭔갈 잃은 적은 없지만, 한번 붙잡히면 5분이고 10분이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얘기를 듣고 있다가 겨우겨우 에둘러 빠져나오곤 했다. 유럽에서도 비슷했다. 기부하라며 종이를 들이미는 사람처럼 적어도 약간의 격식은 차리고 그러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다짜고짜 손부터 내미는 떼거리도 있었다. 터키 길거리에서는 악명 높은 술값 사기꾼을 만나기도 했다. 혼자 다니는 여행자에게 접근해 공감대를 만들어 대화를 끌어가다가 은근슬쩍 ‘술 한잔 사줄게’라며 끌고 갔다가 술값으로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청구해 여행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 치고 좋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전도나 기부와 같이 그럴싸하게 좋은 명목으로 다가와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유럽 생활을 앞두고도 소매치기를 만난 얘기나 인종차별과 같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둘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경계 강도는 일정 수준으로 내 머릿속에 설정된 상태였고, 낯선 이를 조우할 때마다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경계가 발령되었다. 대개 끝이 좋지 않았던 기억은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이들이었다. 


그 아주머니와 대화를 끝마치고 나서, 배낭을 메고 해변으로 향하며 그 순간을 돌이켜봤다. 내 자신이 일순간 부끄러웠다. 성경 이야기를 할 때도 어떠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경계를 풀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주머니의 말에는 전도와 응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100%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란 걸 느꼈다. 로포텐은 이런 곳인가. 맑은 공기처럼 악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일까. 특정한 한 인물과의 만남으로 로포텐 사람들은 다 마음씨가 좋을 것이라는 일반화는 당연히 적절하지 못하다. 여기도 다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갈등과 충돌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것이며 여행자들에게도 흑심을 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포텐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현실의 사람들과는 조금 동떨어진, 다른 느낌이었다. 버스 기사, 편의점 직원, 빈스타드 선착장에서 마주한 형님, 레이네 숙소 주인 아주머니, 캠핑장 주인 아주머니 등등 모두 그들의 표정과 몸짓과 말에는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하루 이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고, 배워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체득한 듯 보이는 여유로움이었다. 이들의 여유로움은 여행자 입장에서도 무사히 여행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과 어려움에 처해도 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일종의 신뢰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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