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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오아시스 Jan 22. 2024

7일차-2. 비바람 몰아치는 하우클란 해변

밥 한 번 먹기도 힘들었던 고단한 하루를 보내다

아주머니와의 만남 이후 힘을 얻어 남은 구간을 걸어갔다. 하우클란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가진데, 하나는 해안선을 따라 돌아가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호수를 낀 산자락을 따라 직진해서 가로질러 가는 방법이다. 두 경로의 거리 차이는 두 배가 족히 넘었기 때문에, 당연히 가로질러 가는 방법을 택했다. 


산자락을 돌아 얕은 오르막을 넘자 산 뒤에 가려져 있던 너른 바다가 나타났다.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졌다. 여전히 해변까진 2km가 남았지만, 눈앞에 목적지가 크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었고 힘을 내어 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해변에 다가갈수록, 흐리기만 했던 하늘에서 가는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와서 내린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썩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하우클란 해변은 람베르만큼 캠핑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 로포텐의 관문 중 하나인 레크네스에서 멀지 않고 접근성도 좋으며, 잔잔한 파도가 아름다운 곳이라 인기 있는 장소 중 한 곳이다. 하우클란 해변에는 특히 캠핑카들이 많았다. 해안가 저편 넓은 공터에 캠핑카들이 작은 주택처럼 오밀조밀 모여 그들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반면 나처럼 텐트를 친 여행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해변에 막 들어왔을 땐, 텐트가 몇 동이 이미 쳐져 있었다. 그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비가 잦아든 틈을 타 나도 평평한 곳에 텐트를 펼쳤다. 백패킹을 하기 좋은 시기는 아닌지라 람베르 캠핑장을 빼면 노지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캠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반갑고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 후 하나둘 텐트를 걷더니 해변을 떠나는 게 아닌가.


하우클란의 하루는 꽤 처량했다. 밥 한 번 먹기도 참 힘들었다. 목조 테이블이라는 좋은 장비가 있었지만, 중간중간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에 집기들이 날아가거나 쓰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코펠 사용법 중에 뚜껑을 뒤집어 프라이팬처럼 활용하는 게 참 재미있어 보였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나름 만찬을 즐겨보고 싶어 레크네스 마트에서 빨갛게 양념이 된 닭고기를 사왔다. 가스에 불을 붙이고 코펠 뚜껑을 뒤집은 후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올렸다. 그러나 고기는 올린 지 채 몇 초 지나지도 않아 먹지도 못할 정도로 코펠에 눌어붙었다. 억지로 고기를 떼 내니 코펠은 이미 지저분하게 타 있었다. 코펠 뚜껑도 코팅이 되어 있어야 하는 등 프라이팬으로 쓸 수 있는 게 따로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들이민 결과는 처참했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는 한낱 신기루가 되어 날아갔다. 그래도 남은 고기는 이대로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 코펠에 물을 부어 고기를 삶았다. 양념이 씻겨 물에 둥둥 떠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큰 마음을 먹고 샀던 양념 고기는 아무 간도 안 된 닭가슴살과 다름없어졌다. 


맛은 없었던 만찬이 끝나고, 하우클란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오락가락했던 비가 어느새 제법 굵은 빗줄기가 되었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로포텐에 입도 후 완벽히 맑은 날은 참 보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구름이 많거나, 산꼭대기도 가려 안 보일 정도로 흐렸다. 그 정도 흐린 날씨는 로포텐에서도 감사한 일이었다. 비가 올 땐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비가 오면 텐트 내에 한기가 돌아, 몸은 따뜻하게 감싸도 얼굴이 차가워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얼굴을 침낭 안에 집어넣자니 너무 답답했다. 캠핑장에는 실내 건물이라도 있었지만, 노지에서는 밖 아니면 텐트 안이었다. 부네스 해변처럼 아무도 없는 곳이었으면 차라리 괜찮았을 텐데, 겉보기에도 편한 캠핑카가 내 시야에 보이니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럽고 지금의 내 모습이 그렇게 처량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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