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클란 해변의 멋진 트레킹 코스, 마넌 산
이 멋진 곳에 와서 비 때문에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었다. 대자연 앞에서 미물에 불과한 나는 그저 비가 그치길 바라고, 또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하우클란 해변 바로 뒤 마넌(Mannen)이란 산에 오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빗속에서 어떻게 잤는지 모를 하루가 지났다. 백패킹을 하는 내내 다음날 텐트 문을 여는 순간이 제일 두근거렸다. 워낙 날씨 변덕이 심하니 하루하루가 복불복처럼 다가왔다. 다행히 빗방울이 텐트를 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밖에 나가보니 구름은 여전히 낮게 드리웠지만, 어제보다 훨씬 시야도 트이고 비도 그쳤다. 가볍게 물만 챙겨 등산길에 올랐다.
마넌 산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는 길 건너 터널의 오른편에 있다. 등산로는 지금까지 갔던 곳과는 조금 다르게 시작했다. 산자락을 따라 아주 낮은 각도로 오르막진 임도가 이어졌다. 임도 앞에는 울타리가 있는데. 선뜻 열고 들어가자니 조금은 멈칫했다. 왠지 모르게 사유지처럼 무단으로 들어가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앞선 사람들의 걸음을 보고 나도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등산로 입구에는 이륜차와 자동차 진입금지, 낙석주의 표지판과 함께 동물 두 마리가 그려진 표지판이 있었다. 그 정체는 양이었다.
등산로에서 얼마 걸어가지 않아 우측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 가족을 발견했다. 어느 목장에 가서 양을 보는 게 아닌, 등산을 하다 자연스레 양들을 가까이에서 보니 신기했다. 로포텐에서는 도통 동물을 보기가 힘들었다. 여우, 사슴, 퍼핀 등 제법 다양한 동물들이 산다고 봤는데 기껏해야 어디서나 흔한 갈매기가 전부였다. 여전히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일까, 내가 찾아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여행에서는 동물을 보는 재미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다니다 길거리에서 동물을 만나면 슬쩍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곤 했다. 새건, 고양이건, 강아지건, 오리건 일단 눈에 보이고 찍기 편안한 상황이면 카메라에 담았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고유한 문화 등을 주로 보는데 거기에 동물들만의 세계가 더해지니 보는 맛이 더해졌다고 해야 할까. 동물 애호가까진 아니지만, 저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귀여웠다. 카메라에 담기에도 좋은 피사체 때문이었던 것도 있다. 살아있는 피사체이다 보니 움직임을 순간포착해 사진을 찍는 재미가 있었다. 갈매기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하지만, 사람이 조그만 과자를 들고 있고 새가 그걸 낚아채 가는 모습은 나에겐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는 재미난 순간이었다. 이곳 마넌 산의 양들도 자기들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등산을 가다가 이렇게 양을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양들의 세상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귀여워 풀을 뜯는 양들을 빤히 쳐다보자, 어린 양 한 마리도 나를 의식했는지 빤히 바라보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 양이 바라보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들도 사람이 신기했던 걸까? 계속 쳐다보니까 사진을 찍던 나도 머쓱해졌다. 나는 그것을 불편하니까 갈 길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양들의 속내를 알 수 없지만, 우리도 낯선 이가 쳐다보면 부담스러운 것처럼 양들도 그럴 것이라고 느꼈다. 산 중턱에도 곳곳에 자유롭게 있는 양들을 마주쳤지만 올라가는 길에 슬쩍 보기만 할 뿐이었다.
완만한 임도를 지나니 진흙으로 뒤덮여 질펀한 등산로가 나왔다.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았지만, 비가 내린 탓에 몇 번이나 발이 미끄러질 뻔했다. 등산로에 어느정도 올라 뒤를 돌아보니 해안가 뒤편으로 이어진 거친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빛 초원과 푸른 바다가 앞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야생적인 멋이 넘친다. 산이 움푹 들어간 골에 형성된 호수는 보석을 빼다 박은 것처럼 아주 깨끗하고 영롱했다.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걸으니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하우클란 해변 쪽 풍경은 굴곡진 산과 낮은 언덕 같은 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생기가 넘쳤다. 앞의 산들이 높지 않다 보니 그 너머의 풍경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하우클란 해변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산 반대편의 우타클레이브 해변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도 하우클란 해변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바다 중 한 곳이다. 우타클레이브 해변은 망망대해가 펼쳐진 풍경이 웅장했다. 구름이 산봉우리에 걸릴 정도로 낮게 깔려도 그 기개는 가리지 못했다. 해안선도 시원시원하고 단순하게 뻗어 호탕한 매력이 느껴졌다. 로포텐은 가는 산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풍경이 질리지 않고 등산의 고단함도 잊게 만들 정도로 멋졌다. 구름이 어제에 비해 조금 걷혔다고 생각했는데, 빗방울이 갑자기 후두두둑 떨어지더니 바람도 점차 거세졌다. 시간에 쫒겨 급하게 밥을 먹듯 날씨가 더 나빠지기 전에 풍경을 두눈과 카메라에 허겁지겁 꾹꾹 담으며 짧은 등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