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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오아시스 Sep 06. 2023

3일차-2. 고급 호텔 부럽지 않았던 아늑한 다락방

몸과 마음에 여유를 주자, 로포텐의 풍경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레이네로 돌아오니 다시 문명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 같았다. 불과 전날 부네스 해변으로 가기 전에 봤던 모습과 전혀 다를 게 없지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많은 차들과 집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과 북적거리는 소리로 채워진 레이네는 정말 고요했던 빈스타드와 자연의 소리밖에 없었던 부네스 해변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작고 아담한 마을이지만, 부네스 해변을 다녀온 뒤엔 과장해서 대도시 같았달까.

레이네


레이네에서는 숙소를 잡아 하루를 묵어가기로 했다. 이 결정은 부네스 해변에 가기 전에 했다. 첫 날부터 너무 로포텐의 매운 맛을 보니 혼이 쏙 빠졌다. 다행히 부네스 해변에 들어간 날은 날씨가 좋았지만, 숨을 돌리고 몸과 짐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노지 숙박으로 10일을 보내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숙소 찬스를 한 번은 쓸 계획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숙소라는 각오로 숙소 탐색에 돌입했다.


작은 마을인데다 하루 전이라 그런지 선택지가 많진 않았다. 마땅한 도미토리 룸을 찾기 힘들었고, 싱글룸은 요금이 상당히 비쌌다. 탐색을 계속 이어나가다 썩 괜찮은 숙소를 발견했다. 나는 곧장 예약 문의 메일을 보냈다. 문의를 보냈던 당일에는 빈 방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은 가능한지 물었다. 다음날은 빈 방이 있다고 했다. 마침 누군가 방금 막 싱글룸 하나를 취소했다고, 당일날 투숙을 원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빈 방이 없다는 답신을 받자마자 부네스 해변에서 일단 1박을 하고 레이네에 돌아와 숙박을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다음날 묵기로 결심했다.


방이 있다는 기쁜 소식에 ‘감사합니다!’라며 답장을 보내며 예약에 필요한 정보를 함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투숙 전 궁금한 것들도 미리 물어보았다. 일찍 방문해도 괜찮은지, 홈페이지에서 본 가격이 맞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숙소 주인은 예약을 완료했다는 반가운 답장과 함께 요금을 보내주었다. 처음에 웹사이트에서 봤던 가격과 일치했다. 요금은 550크로네. 우리 돈으로 7만원 쯤 하는 금액이다! 노르웨이의 물가와 로포텐의 전반적인 숙박비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편인 듯했다. 물론 우리나라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선 대체로, 혹은 무척 비싼 편이다. 그렇지만 레이네를 보다 편하게 둘러보고, 남은 여정을 위해 깊은 휴식을 취하고 정비하며 가는 차원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열흘 내내 찬 공기 마시면서 자기보다 하루 정돈 이렇게 번듯한 숙소에서 쉬다 가는 재미도 있어야 했다.


내가 숙박 날 오전 11시쯤 방문할 것 같다는 물음엔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약간 난색을 보였다. 체크인은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이것이 나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란다며 답변을 보내 주었다. 부네스 해변에서 돌아오면 11시쯤 될 텐데, 어디 배낭을 메고 마땅히 갈 데가 없으니 물어보았다. 그 시간에 체크인을 못 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다. 규정도 규정이지만 객실 정비도 한창일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시간대에 여행자들이 숙소를 찾아가선 짐을 맡긴다. 짐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하고 편하게 체크인 전까지 시간을 보내며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짐 보관 정도는 가능하냐는 물음엔 귀엽게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체크인 전까지 보관할 수 있다고 회신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11시 근처에 뵙겠다는 약속을 잡았다.



부네스 해변에서 다시 레이네로 돌아온 후, 약속한 시간이 임박해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 주소를 확실하게 인지한 상태였고, 버스정류장 바로 맞은편에 있어 전날 배를 탈 때 처럼 헤메지 않았다. 건물은 아이보리 색으로 아담한 2층집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짧은 인사로 인기척을 하니 곧 주인 아주머니가 내려오셨다. 앞서 연락한 대로 짐을 잠시 보관하고 싶다고 하자, 계단 옆 빈 공간에 내려놓으라고 했다. 내 몸무게의 20%에 육박하는 배낭을 내려놓자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을 정도로 몸이 가벼워졌다. 바깥에서 본 숙소는 영락없는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았다. 1층은 2층으로 향하는 통로 겸 숙박객 응대도 하는 작은 공간이었고, 2층은 여느 게스트하우스와 같았다. 네 명 정도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화장실 등 숙소의 규모에 알맞은 공용 공간이 작게 있다. 바닥과 벽은 물론 천장까지 갈색 목재로 도배되어 통일감을 주었다. 아늑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2층 위에는 좁게 난 한 층이 더 있었다. 내 방은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바로 그곳, 다락방이었다. 여러 방들 중에서 가장 싼 곳이라 예약했지만, 얼마간 더 살아보고 싶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천장이 비스듬하게 내려오는 직각사다리꼴 모양의 다락방은 넓은 곳은 키가 167cm에 불과한 내가 반듯하게 설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충분했고, 목재 벽은 숲 속에 있는 느낌을 주었던 공용 공간과는 다르게 진한 하늘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어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다. 혼자서 눕기에 안성맞춤인 싱글 침대와 작은 탁자, 가로 줄무늬가 알록달록한 테이블보와 카펫이 아기자기하면서 방 안을 매력적으로 꾸며주었다. 벽에는 작은 창이 나 있고, 그 밖을 통해 보니 산과 바다와 함께 빨간 로르부(노르웨이 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가옥)가 조화를 이루는 마을 풍경이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같았다. 그 속에 있는 난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마을에 사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텐트에서 문을 열고 보는 풍경도 좋았지만, 몸과 마음에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 아늑한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니 몇십 만원 하는 고급 호텔에서 묵어도 못 누릴 것만 같은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었다.

1박 7만 원이었던 숙소의 아담한 다락방
다락방에서 본 로포텐 풍경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그림이었다.

*여행 시기는 2018년 6월이며, 글 속 상황은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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