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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Nov 01. 2023

타슈켄트의 민속촌, 나브로즈 파크에서 땡볕을 마주하다

국가가 밀어주는 나브로즈의 의미

엄마를 모시고 온 배낭여행을 반성하며

 다시 찾은 타슈켄트에서 하루종일 호스텔 좁은 방에 누워있던 엄마를 3일 만에 일으킨 건 다름 아닌 대관람차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크다는 72미터 대관람차를 타보자고 슬슬 엄마를 설득하니, 대관람차만 보고 나는 호스텔로 다시 돌아올 거야. 신신당부하며 일어서셨다.

나브로즈파크의 대관람차



 대관람차만 바라보고 간 나브로즈파크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입구부터 세련되고 층고가 아주 높은 대형쇼핑몰이 있었는데, 규모가 작긴 해도 놀이동산부터 외국제품을 파는 대형 슈퍼마켓까지 있을 건 다 있었다. 에어컨까지 나오니, 오랜만에 관광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타슈켄트의 구도심인 초르수 시장 앞에서 살다가, 여기에 오니 마치 남대문시장에서 코엑스로 넘어온 느낌이었다. 세련된 쇼핑몰에 오니 엄마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나브로즈 파크 앞 쇼핑몰



 나브로즈파크 앞에는 하루에 숙박료가 10만원인 라마다호텔이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늘 컨디션 난조에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만약 내가 돈 아낀다고 초르수 시장 앞 호스텔에 가는 게 아니라 라마다호텔에 묵고, 매일 세련된 쇼핑몰에 갔다면, 아마 엄마가 덜 짜증 내지 않으셨을까.




 엄마의 첫 해외배낭여행은 내가 대학생 신분을 벗고 취직이 되어 모은 돈으로 같이 간 일본 규슈지역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엄마와 나 단 둘의 배낭여행, 높은 일본 물가에 돈아낀다고 초미니호텔에서 묵고, 매일 대중교통을 타고, 때로는 놀이터 벤치에 나란히 앉아 슈퍼에서 산 주먹밥을 먹었다. 놀이터에서 주먹밥을 씹던 어느날은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놀이터의 모래가 입속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여행 내내 엄마와 나는 사소한 의견 충돌로 티격태격했다. 호텔에서 나는 일회용 슬리퍼 신고 다니는 걸 귀찮아했는데, 엄마는 맨발로 다니지 말라고 성화였다. 또 내가 자판기에서 오렌지주스를 사 먹겠다고 총무인 엄마에게 동전을 달라고 하니, 엄마는 살찐다고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나도 가만히 안 있었다.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 먹을까 하고 물었던 어느 관광지 길거리에서, 나는 "나는 오렌지주스 못 먹게 하면서 웬 아이스크림?"이라면서 딴지 걸었다. 평소 사이가 좋았던 엄마와 나 사이는 일주일 배낭여행으로 거의 원수가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온천마을에 가게 되었을 때, 미리 숙소 예약을 하지 않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1인당 1박에 17만 원 하는 좋은 온천장에 묵게 되었다. 깨끗한 다다미방에 여장을 풀고, 온천장에서 제공하는 편한 전통옷을 입고, 나무가 드리운 아름다운 야외온천에 몸을 담갔다. 온천이 비싼만큼 뽕을 뺀다고 따듯한 물에 오래 몸을 담구고 있다가 일어나니 기립성 저혈압이 왔는지 앞이 순간 깜깜해졌다. 아무튼 비싼 것도 적당히 즐겨야 한다.

 저녁과 아침은 온천장에서 방까지 날라주는 아름답고 정갈한 찬을 먹었다. 여행 내내 나에게 화가 나있던 엄마가 그날 밤 말했다. "우리 딸, 정말 잘 컸네. 우리 딸 덕분에 이런 곳도 다 와보고."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올 때는 배낭여행이 아닌, 편한 여행이어야 한다는 걸.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그때 처절하게 깨달았던 진리를 또 까먹었네. 라마다호텔과 나브로즈파크 앞 슈퍼마켓을 거치며, 이번 중앙아시아 여행도 다 내 욕심에서 엄마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브로즈는 우즈베키스탄이 밀어주는 국가 공식 명절
  나브로즈 공원의 나브로즈(Navruz)는 '새날'의 뜻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나브로즈라는 명절로 기념되고 있다. 3천 년전 이란 북동부의 호라산 지방에서 유래한 이 명절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퍼지게 되었다. 소련시절, 나브로즈도 투르키스탄에서 이슬람 종교의식으로 분류되어 금지령에 처해졌지만, 소련이 해체되면서 나브로즈는 러시아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나타내는 우즈베키스탄의 정체성의 상징이 되어 국가적으로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나브로즈 공원도 나브로즈라는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인지 2017년 8월에 대통령령에 의해 착공되었다고 한다.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부하라의 아크요새 등 우즈베키스탄에서 유명한 역사건축물들을 모두 끌어다가 미니어처로 지어놓았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이 공원의 목적, 즉 국가 정체성 강화가 눈에 띄게 보였다.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이라고 했던가? 이 국가 주도하에 지어진 인공적인 민속촌을 보면서, 역사적으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다민족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이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이거야.'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 공원은 매우 한적했다. 43도 한낮 땡볕에 열기가 그대로 올라오는 이 공원에 다니는 건 뭣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들 뿐이었다. 현지인들은 센스있게 태양이 사라진 저녁에 모두 이 공원으로 집결할 예정인 것 같았다. 타는 사람도 하나도 없는데도 끝없이 돌고 있는 72미터 대관람차에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타슈켄트에서 대관람차에 올라타니 나브로즈 공원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관람차를 타고 다시 나브로즈 공원을 돌아볼 생각이었으나, 대관람차를 타고 전경을 보니 나브로즈 공원이 전체적으로 나무 그늘이 없었다. 2017년 막 착공한 공원이니 5살짜리 나무들이 그늘을 조성할 만큼 컸을 리 없었다. 양산을 써도 보도블록에서 복사열이 올라오는지 주원이의 머리카락이 땀으로 범벅되었다. 우리는 대관람차에서 나브로즈 공원에서의 후퇴를 결정했다.

참고자료 :

우즈베키스탄 '나브로즈' 축제의 역사와 상징성/윤시내(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학과 강사)

A new “Navruz” park is being built in Tashkent (uzdaily.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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