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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Oct 25. 2023

타슈켄트에서 아이스스케이트 타기 3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스케이트 강습

 단돈 5만 숨(한국돈 약 5400원)에 1대 1 아이스 스케이트 개인교습이라니, 이 정도 가격이라면 우즈베키스탄에 아이스 스케이트 유학이라도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신나는 마음으로 약속한 오후 1시에 후모 아레나에 도착하니 주원이의 일일 교습 선생님인 다니엘라가 동료남자선수와 매점에서 깨작깨작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다니엘라는 분명 어제 내가 오후 1시에 오겠다고 했는데도, 안 올 줄 알았다며 매우 기뻐했다.

후모 아레나의 작은 매점(저 안경은 아이비에커가 준 안경..)



 다니엘라는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에서 보던 친구들과 달리 매우 자유분방해보였다. 화려한 네일아트, 남녀가 서로 동등한 친구로서 내외하지 않음, 외국인에게 다가와서 명랑하게 말 거는 성격, 거침없는 자기 홍보 등, 수줍어하던 우즈베크의 젊은 여자들과 확연히 달랐다. 바허나 아이비에커네 집에 갔을 때, 바허나 아이비에커 와이프들과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지만, 손님이 있는 동안 인사만 잠깐 했을 뿐 온종일 서빙하느라 바빴고, 또 서빙이 끝나자 부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른 우즈베키스탄 여성들도 매우 수줍어하면서 외국인인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다니엘라가 현지인 여성과 다른 건 무엇보다도 눈빛이었다.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침없는 눈빛, 우즈베키스탄에서 현지인 여성으로부터 느껴보지 못한 타인을 향한 당당함이었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 여자였지만, 선수생활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러시아 여자코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그러고보니 방문객이 거의 없이 텅 빈 후모아레나도 차츰 이해가 되었다. 지금은 일이드하, 즉 한국으로 치면 설날이나 추석에 버금가는 큰 명절기간이었다. 이슬람 문화권이라면 이런 중요한 명절에 아이스링크에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집에서 일이드하 명절에 맞게 음식을 준비하고 친인척을 만나야 맞다. 어제 후모 아레나에서 만난 호랑이 여성 코치도 분명 러시아인이었다. 일이드하 영향을 덜 받는 사람들끼리 아이스링크에 모였구나. 
 다니엘라가 샐러드를 먹는 동안, 주원이도 매점에서 러시아 케이크 메도빅을 사먹었다. 메도빅은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얇은 빵 사이에 크림이 발라져 있었는데, 매점에서 파는 메도빅은 네모나고 작아서 케이크보다는 시루떡에 가까워 보였다. 매점에서 메도빅을 사려고 하니, 다니엘라와 같이 샐러드를 먹던 남자선수가 벌떡 일어나 계산을 도왔다. 매점에는 따로 직원이 없고 선수가 매점 일도 겸하는 모양이었다. 언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이런 허접한 케이크를 주원이한테 먹이고 싶지 않았지만 후모 아레나 주변에는 식당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우리나라 월드컵경기장 근처처럼 주변이 휑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호스텔 근처에서 난(non)이나 토마토와 자두를 사가지고 올걸 후회했다. 

매도빅(구글 발췌)



 다니엘라는 길고 화려한 네일아트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주원이의 스케이트를 직접 신켜주더니, 빙상에 가서는 구글 번역기로 주원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다니엘라는 말도 참 많았는데, 번역기에 대고 한참을 말하면 번역기의 여자기계음이 한글 번역을 딱딱하게 읽어주었다. 
 "안녕, 왕자님. 잘 생기고 귀여운 왕자님. 잘했어요. 이제 발을 너무 벌리면 안 되요. 그러면 넘어져요. 자, 저를 보세요(....)"
 거의 1분 간격으로 다니엘라는 번역기에게, 번역기는 우리에게 통역을 해줬다. 딱딱한 구글 기계음 속에 주원이의 집중력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니엘라는 보조만 해주고, 스케이트를 조금 탈 줄 아는 내가 한국어로 코칭하면서 수업이 조금씩 진행되었다. 아무리 스포츠라고 해도 결국 교습에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주원이의 스케이트 실력을 바라고 개인강습을 신청한 건 아니었기에, 별다른 실망도 없었다. 그럼에도 주원이는 조금씩 스케이트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음날도 후모아레나를 찾았다.

다니엘라와 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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