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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Oct 13. 2023

타슈켄트에서 아이스스케이트 타기1

타슈켄트 여름에 할일 찾아 나서기


 우리가 타슈켄트에서 머물던 때 우즈베키스탄의 명절 이드 알아드하(Eid al-Adha)가 시작되었다. 이드 알아드하(عيد الأضحى)는 이슬람교의 중요한 정규 축제 중 하나로, 이슬람력 12월 10일에 열리는 제물을 바치는 축제라고 한다(출처:나무위키).
 사실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거치며 다시 타슈켄트에 오는 동안 나는 우즈베키스탄 명절이 도래함을 알게 되었는데, 평소 외국 현지인 친구들과 많이 교류해본 나로써는 명절에 아이비에커나 바허가 자기네 전통명절을 쇠는 일에 우리를 초대하겠지 하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7/9~7/12동안 알아드하기간이었다.




 하지만 바허는 나의 친구였음에도 15년 전 '쾅쾅쾅 PC방 사건' 이후 지금까지도 나에게 절대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당시 바허의 룸메이트였던 아이비에커가, 나한테 화를 내고 나서 다시 방으로 돌아가 나와 PC방에 같이 갔다 새벽녁에 들어온 바허한테도 호되게 군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바허는 나로부터 차단되고 있었다. 내가 타슈켄트에 다시 돌아온 사실을 아이비에커가 바허한테 말도 안 한 눈치였다. 이러니 나도 아이비에커때문에 바허가 미친듯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비에커 또한 과거 나와의 관계 때문에 나를 외국인 친구로 대하지 않게 되면서 가족 행사에 우리를 초대하기 보다는, 가족 몰래 만나야 겠다는 생각만 가득한 듯 했다. 너희가 다시 초대하는 건 기대도 안 해라는 태도로 내심 쿨한 척은 했지만, 결국 친구대접을 못 받은 나는 타슈켄트에서 엄마가 몸 회복을 하실 동안 아이를 데리고 혼자 놀러다녀야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초대받지 않은게 다행이기도 했다. 시장에서 건강한 양을 골라다가, 집 마당에서 직접 칼로 죽이고, 또 고기를 해체하고, 고기를 나누어주고, 고깃국을 해먹는 알아드하 명절은 채식주의자인 내가 즐길 수 없는 살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43~45도까지 치솟는 날씨의 타슈켄트에서 나는 주원이를 데리고 어디를 갈 수 있을까. 트립어드바이저를 찾아보면 추천장소가 모스크와 마드라사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두 종류의 건축은 화려하긴 하지만 내부를 들어가보면 메카 가리키는 방향만 있을 뿐 대부분의 면적이 아기자기하기 보다는 절하는 광장으로 쫙 깔려있어 흥미가 떨어졌다. 게다가 여자는 또 못 들어가게 해놓아서 배척받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시장도 이제는 그저그랬다. 딱히 살 것이 없으니 흥미도 떨어졌다. 박물관을 가는 것도 주원이에게는 고역일 것 같았다. 
 그렇게 갈만한 곳을 추려보니 다음과 같은 대안이 나왔다. 

 : 야외놀이공원, 야외수영장, 실내키즈파크, 스케이트장, 시티투어버스 

 그 중 그나마 신선한 스케이트장 옵션을 택해 보기로 했다. 구글에 검색해본 바로는 타슈켄트의 실내 스케이트장은 2군데였다. 하나는 타슈켄트 남서쪽에 있는 이즈 애버뉴링크였고, 또 다른 하나는 타슈켄트 시티파크 근처에 있는 Humo arena였다. 그 중 우리가 갈 후모 아레나 사진을 보여주니 주원이가 말했다. 
 "어, 이거 수서역인데?"
 그러고보니 우리집 앞의 수서역 SRT기차역과 건물 외관이 주는 느낌이 흡사했다. 어떻게 보면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느낌이기도 했다. 세련된 외관을 보니 지은지 얼마 안 된 최신 시설같았는데, 알고보니 2017년 착공해서 2019년 개장한 따끈따끈한 건물이었다. 


Humo arena(구글맵에서 발췌)





 숙소를 나서기 전 아이비에커에게 전화가 왔다.
 "은주, 오늘은 어디가."
 "어, 아이스링크 가는데? 후모 아레나라고. 오늘 주말인데 가족들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 나 신경쓰지 말고. 잘 다녀올께."
"그래. 안전조심하고."
 아이비에커의 목소리 뒤로 그의 딸아이 목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가족과 함께 있어서인지 목소리가 경직되어 있고 딱딱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아이비에커는 우즈베키스탄의 큰 명절을 앞두고 매우 바쁜 모양인지 더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심심한 주원이를 위해서, 주원이 또래가 있는 바허네 놀러가서 주원이의 우즈베키스탄 친구를 만들어주고도 싶었지만, 바허는 내가 타슈켄트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지 연락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좀 그랬다. 바허는 한때 나랑 PC방도 같이 가고, 서북대학교 교정 잔디밭에 같이 누워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보고, 내가 엄마때문에 속상해서 하루종일 울 때는 바허가 따뜻한 우유를 머그잔에 데워서 방 앞에 놔주던 막역한 사이였는데... 나의 우즈베키스탄 친구들과의 관계는 한마디로 망한 느낌이었다. 내가 아이비에커랑 엮이고 난 후에도 바허는 여전히 나에게는 친구였지만, 바허는 나에게 '아이비에커' 딱지를 붙여버린 모양인지 우리는 내외하게 되었다.
 과거는 그렇다치고, 이번에 우즈베키스탄 오기 전에 바허만은 보고 싶어 바허한테만 연락했는데, 바허는 눈치도 없이 왜 아이비에커에게 연락해가지고 일을 크게 만드나... 나의 바허를 향한 순수한 우정도 일방향이었나보다.

 후모아레나는 주말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잠실 아이스링크에는 평일에도 주말에도 17000원이나 비싼 표값을 내고도 사람들이 북적북적이는데, 후모 아레나를 타슈켄트 사람들은 아예 모르는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아이스 스케이트를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부하라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유학생 알로딘을 나중에 한국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서울의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경복궁도 아니고, 인사동도 아닌 잠실 아이스링크를 가고 싶다고 했다. 어설픈 단어들로 잠실 아이스링크를 가고 싶은 이유를 댔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건 고릿적 드라마 천국의 계단때문이었다. 알로딘은 25살이고, 천국의 계단은 2003년에 방영한 드라마이니, 천국의 계단은 알로딘이 5살 꼬꼬마일때 상영된 고전 중 고전이었다. 이런 걸 보면 우즈베키스탄은 한번 사들인 한국드라마를 틀고 또 트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이비에커네 엄마도 한국 드라마 주몽 얘기를 아직도 했다. 


천국의계단 장면(유튜브 발췌)


 이런 멋지고 시원한 후모 아레나를 두고 타슈켄트 시민들은 도대체 어디에 가있는 걸까. 그렇다고 한낮에 타슈켄트 사람들이 전혀 외출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다가 잠깐 들른 매직시티에는 아직 11시도 안 되었는데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실내가 북적거렸다. 여보세요, 좁은 실내에 그저 그런 놀이기구가 한데 뭉쳐있는 매직시티를 가지 말고, 아이들하고 여름에 올 '찐'은 후모 아레나라니까요. 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후모 아레나에 평소 아이스 스케이트 타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 매표소 직원도 당연한 듯 자리를 비웠다. 멋진 검정 정장을 아래위로 빼입은 경비직원이 후모아레나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외국인 우리를 보고는 안쓰러웠는지 우즈베크어인지 러시아어인지 몇 마디 건넸다. 10여분 후 매표소 직원이 자리에 돌아오자, 경비직원이 입구의 의자에 조용히 앉아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영어와 제스처로 이제 까사(касса:매표소)에 가도 된다고 얘기해줬다. 표는 30분과 60분으로 나뉘어 있었고, 초심자가 못 탈경우 잡을 수 있는 펭귄지지대 사용료도 따로 부과하고 있었다.아니, 어떻게 30분 표를 팔지? 아이스스케이트 특성상 신을 신는데만 5분은 족히 걸리겠다. 나중에 스케이트를 타며 관찰한 바로는 후모 아레나에 방문한 타슈켄트 사람들 대부분 30분 티켓을 끊었다. 대부분 스케이트를 처음 타는 모양인지 보조기구 없이 타는 방문객은 상주연습하는 선수들 외에는 없었다. 타면서는 스케이트를 타는 시간보다 사진을 찍는 시간이 더 길어 보였는데, 이건 그야말로 스케이트연습이 아니라 빙상 체험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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