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에 들어간 후, 주원이에게 펭귄지지대를 쥐어주고는 나는 주원이 곁을 어슬렁거렸다. 60분 표를 끊은 건 우리 밖에 없었는지 점심시간이 되자 그나마 3명 있던 우즈베크 현지방문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빙판을 지키고 있는 건 펭귄지지대에 의존해서 뒤뚱거리는 주원이와 나, 그리고 후모 아레나에서 연습하는 전문선수단 밖에 없었다. 노란 머리에 짧게 머리를 자른 중년여자코치가 대기석에서 매의 눈으로 선수단을 지켜보고 있었고, 4명의 선수들은 얼굴에 웃음끼도 하나 없이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중년여자코치는 선수들을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불현듯 선수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크게 고함을 질러 선수들을 대기석 근처로 호출했고, 다시 지시를 받은 선수들은 무서운 코치눈치를 보며 기술을 연마했다. 한국 잠실에 있는 스케이트장은 방문객들을 위해 공중의 스피커로 크게 대중가요를 틀어놓은 반면, 후모 아레나는 빙판을 스케이트가 갈아먹는 소리 외에는 침묵만이 감돌뿐이었다. 코치의 고함소리는 윙윙윙 후모 아레나를 울렸다. 코치가 고함치든 말든, 신난 주원이는 펭귄 지지대가 불편하지 않은지 점점 동선을 늘리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둘은 빙판 한편에서 부지불식간에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기석에서 선수를 바라보고 있던 여자코치가 근엄한 얼굴로 우리에게 러시아어로 한마디 했다. 못 알아들으니, 제스처를 섞어서 다시 고함을 쳤는데,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역주행하면 안 돼요. 지금 선수들 여기 있는 거 안 보여요. 제대로 도세요.'
후모 아레나의 펭귄 지지대
나는 역주행하는 주원이를 바로 세우는 동시에 선수들처럼 여자코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제빙시간이 가까워오자, 여자코치가 대기석에서 사라졌다. 비로소 바짝 긴장했던 선수들이 웃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방문객들이 아무렇게나 놓고 퇴장한 하얀 성인지지대와 펭귄지지대를 정리하고는, 후모 아레나에 유일하게 남은 방문객인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중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선수가 주원이를 물개지지대에 앉히고는 썰매를 태워주고 나에게 러시아어로 말을 걸었다. 말이 안 통하자 이번에는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또 다른 여자선수가 다가와 나와 주원이를 번갈아서 보며 웃으며 러시아어로 말했다. 영어밖에 못 한다고 하자, 남자선수와 여자선수가 서로 토론을 하더니 토론 끝에 여자선수가 제스처로 빙판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후모아레나에서 어느 남자선수가 주원이에게 썰매를 태워줬다.
그 여자의 이름은 다니엘라였다. 열손가락에는 반짝반짝 긴 네일아트를 했는데, 빙판 밖 매점에 우리를 앉히더니 어디선가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와 얀덱스 번역기에 대고는 러시아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제빙시간이니까 우리가 빙판에 나가야 한다거나, 이제 우리 입장시간 지났으니 퇴장해야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다니엘라의 핸드폰에는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당신 아이가 귀엽다. 나에게 8시간을 주면 아이가 스케이트를 잘 탈 수 있도록 가르쳐줄 수 있다. 가격은 1시간에 50000 숨이다.' 개인레슨제안을 받는 순간 나는 너무 기뻤다. 이 삭막하고 더운 타슈켄트에서 드디어 주원이와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은 것이다. 다음 날 우리는 다이엘라를 만나러 또다시 후모 아레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