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사로부터 온 연락
전자책 세 권을 성공적으로 출간한 나는 이제 소속 작가님의 육성이 담긴 오디오북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 아이를 피아노학원에 데려다 주며, 나는 핸드폰을 꺼내 오디오북을 공급하는 전자책 앱을 만지작거렸다. 여기에 우리 출판사 책이 곧 나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그 때, 핸드폰에 새 카톡이 왔다. '잘 지내?'
전업 출판인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기획부터 서지 발간, 세금 신고까지… 전자책이라 해도 한 권을 세상에 내놓고 유통하려면 생각보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대기업에 다닐 때는 거대한 조직의 작은 부품처럼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늘 아쉬웠다. 하지만 출판사를 운영하면서부터는 기획자, 디자이너, 영업팀, IT 부서, 회계팀까지 모든 역할을 직접 소화해야 했다. 책 한 권이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온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를 배에 품는 엄마처럼, 나는 작가님의 글을 마음으로 온전히 끌어안았다. 정삼이 작가는 생업을 위해 동네 의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환자가 비는 1~2분의 짬을 모두 활용해서 핸드폰으로 글을 써왔다. 한 땀 한 땀 영혼을 담아 쓴 글이라는 걸 알기에 뽀득뽀득 빛나게 하고 싶었다. 출판사 사장님은 편집자로 변신하여 문장 교정에 들어갔다. 그의 투박한 문장이 하나둘 정제되고 다듬어지며 생명력을 얻어가는 과정은 나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마치 무대 뒤에서 배우를 가장 빛나게 만들어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처럼, 작가의 글이 빛나는 순간이 곧 내 희열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박수소리 출판사의 첫 에세이물이 출간되었다.
내가 스스로 낸 책 2권 그리고 소속작가님의 에세이물 1권, 이렇게 우리 출판사는 몇 개월 만에 전자책 3권을 보유한 출판사가 되었다. 내가 쓴 글이 아닌, 소속작가님의 책을 내자 비로소 진짜 출판을 해본 느낌이 들었다. 교정과 교열을 반복하고, 선배 출판인들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눈여겨보면서, 글의 상품성을 보는 눈도 길러졌다.
소속 작가님의 기획출판의 한 사이클을 돌고 나자. 이제는 더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새롭게 섭외하고 싶은 작가도, 시도해보고 싶은 장르도, 전자책 EPUB3의 무한한 가능성에 기여하고도 싶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목표로, 박수소리 출판사의 첫 오디오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정삼이의 에세이를 바탕으로 오디오북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녹음실을 예약하고, 정삼이 작가와 한국어 발음을 연습하고, 기타 연주까지 연습했다. 수차례의 녹음을 마치고 나서는 음향 효과를 모았다. 책 속에서 정삼이가 비 오는 운동장을 뛰어다닐 때는 장맛비 소리를, 기타를 실수하는 장면에서는 엉뚱한 코드가 튀어나오는 소리를, 바람 부는 장면에서는 휘이-휘이- 가을바람 소리를… 출판사 사장이던 나는 이제 PD의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완성된 원고는 MP3 파일로 다시 태어났고,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에 계약을 타진하는 메일을 보냈다. 답장을 기다리며 출판인으로서의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던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그 회사, 내가 발로 뛰쳐나온 전 회사에서 알 던 인연이었다.
나는 회사를 떠난 후, 회사 사람들과는 일절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런데… 3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