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칼파키스탄 자치공화국의 유혈투쟁
7월에 히바에 와서 시원함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더워도 너무 더웠다. 우르겐치로 오는 비행기에서도 창문 밖을 바라보았을 때 온통 황토색이지 않았나. 구글 지도를 펼쳐보면 우즈베키스탄은 황토색, 키르기스스탄은 초록색이었다. 그만큼 우즈베키스탄 전체가 사막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무 하나 접하기 힘든 히바성을 어제에 이어 다시 본다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부하라로 가는 기차는 내일인데, 그렇다고 좁은 호텔방에 하루 종일 있을 수는 없어, 호텔 리셉션 뒤에 대문짝 만하게 붙여져 있는 사막 택시투어를 신청하기로 했다. 택시 안은 그래도 에어컨이 나온다고 했다. 덥지만 택시 안에서 에어컨으로 잔뜩 샤워하고 살짝 구경하면 되겠지.
당일 택시투어를 신청했음에도 워낙 관광객이 없어서 그런지 택시투어가 바로 접수되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더위로 인해 얼굴이 무지막지하게 탄 아저씨가 목이 늘어난 아이보리색 카라티를 입고 숙소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그때 당시에는 택시투어의 목적지가 히바 근처 사막이겠거니 했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우즈베키스탄 내 존재하는 어엿한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이었다. 즉, 국적은 우즈베키스탄이지만 자치권은 그들 고유에게 있는 공화국이었다. 국기도 우즈베키스탄과 다르며, 인구구성도 카라칼파크인이 다수를 유지하고 있다.
자치권 때문에 별다른 분쟁 없이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우즈베키스탄도 알고 보면 내부 갈등이 어마어마했다. 우리가 카라칼팍스탄 택시투어를 한 게 2022년 6월 29일이었는데, 약 1주 뒤 카라칼팍스탄에서는 유혈투쟁이 벌어졌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카라칼팍스탄 자치 지위를 박탈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라칼팍스탄은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3년 우즈베키스탄과 20년 합병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는 국민투표로 우즈베키스탄을 탈퇴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고, 이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약속한 20년이 지나도 독립권 요구는 묵살되었다.
이 개정안 반대를 위해 카라칼 자치공화국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 시위 진압과정에서 무려 14명의 시민과 경찰관 4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넘는 인원이 부상했다고 한다. 사람이 걷기도 힘들 정도의 이 더위에 대규모 시위를 했다고 하니 정말 힘들었겠다 싶은데, 사람들까지 죽었으니 얼마나 시위가 엄중했는지 알 수 있다. 공화국 시민들의 강렬한 저항으로 우즈베키스탄은 카라칼팍스탄의 지위를 박탈하려던 헌법 개정 방침을 철회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시위가 해외에 보도될 것을 우려했는지 지역 인터넷망을 차단하고, 구금된 시민들의 핸드폰에서 시위 장면을 모두 삭제했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 인터넷망까지 차단한 것을 보면, 이 시위가 얼마나 억압적이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매우 엄중했던 이 사태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경향신문이 기사를 내주었다.
과거에 이미 한 약속을 지켜달라고 시위했을 뿐인데, 많은 시민들이 그 과정에서 사상을 입었다. 해외언론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이번 사태를 다룬 라디오프리유럽의 링크를 공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