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바에는 초록색 국수가 있다

히바의 독특한 요리의 향연을 즐기다

by 박수소리


히바에 도착한 게 6월 28일, 너무 더웠다. 성제 오빠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은 8월에는 더위가 더 기승을 부린다고 가려면 지금 가는 게 맞다고 주의를 주었는데, 지금이 바로 더위의 최전선인 때가 확실했다. 목욕탕 사우나 입장 전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들어가는 심정과 똑같았다. 히바에 도착했으니 관광은 해야겠는데, 한 발짝 내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길이 이미 달궈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양산도 무의미했다. 43도였다.


우리가 히바에 있었던 그날 43도까지 치솟았다( https://rusmeteo.net/en-US/weather/hiva/jun-28/)


슈퍼도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그래도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오후 2시경 유아차를 끌고 드디어 한 발짝 떼었다. 히바 성 안에는 가로수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식당까지 걸어서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음에도, 그 길이 길게 느껴졌다.
서양채식주의 관광객들에 의해서 이미 길들여진 식당 Teressa은 정말 채식 친화적이었다. 영어 메뉴도 따로 있었고, 채식 메뉴도 따로 표기되어 있었다. 메뉴에는 Veg라는 표기가 따로 되어 있었는데, 이 것은 아마도 우유나 치즈를 허용한 Vegetarian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메뉴는 관광지인 데다 영어 메뉴까지 제공되어서 그런지 외곽 식당보다 2배는 비싸 보였지만, 영어와 채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2배 가격을 지불하는 게 아깝지 않아 보였다. 더위만 아니었으면 즐겼을 아름다운 테라스도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여기 식당은 3층에 루프탑 뷰도 즐길 수 있고, 루프탑 뷰에서는 관악기로 스팅 등 해외여행객들을 위한 선곡의 라이브도 해준다. 이곳이야 말로, 나에게는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우르겐치에 있다가 히바에 오니 좀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랄까. 종업원들도 영어를 너무 잘했다. 나중에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도 가게 되었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이 레스토랑이 가장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Teressa의 음식들(토마토샐러드, 비트샐러드, 시빗 오쉬, 호박수프)




히바가 우즈베키스탄 호레즘 주의 도시인만큼 특색 있는 요리들도 은근히 있었다.


그린누들로 파는 시빗오시(shivit oshi)는 향신채인 딜을 넣어 국수를 만들고, 거기에 요구르트와 비프 슈트를 함께 내놓았다. 면에는 계란이 들어가 있고, 수프나 요구르트도 모두 비건이 아니라 엄마가 드실 수밖에 없었지만, 딜을 넣은 국수는 처음 보는 것이라 신선했다.


한국 분식점의 야끼만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호리즘 굼마(Horazmcha Gumma)도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듯해 보였다. 본래 Gumma에는 소고기만 들어가는데, 서양인들이 다른 채식 굼마를 요구하면 상황에 따라 구워서 서빙해 주는 음식이었다. 야채를 꽂은 채소 샤슬릭도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채식 메뉴가 가능함을 알려준 아름다운 식당 Teressa에서 그날은 점심과 저녁을 모두 해결했다.


굼마와 채소 샤슬릭


식사가 끝나고 밤 8시가 되어서 해가 지기 시작하자, 드디어 사람이 걸어 다닐만한 온도가 되었다. 우리는 해를 피해 슬그머니 성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해가 지자 히바 성의 미나렛에 조명을 밝게 해 놓아, 순식간에 운치 있는 히바가 되었다. 미친 듯이 더웠던 사막의 도시가 낭만의 도시로 바뀐 느낌이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슈켄트를 여행하는 동안 느껴보지 못한 낭만이 여기에 있었다. 숙소도 아름답고, 음식점도 채식 친화적으로 대응해 주고, 관광인프라도 조성되어 있으니 나는 순식간에 히바에 반하고야 말았다. 아마 우르겐치가 그렇게 까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면, 히바가 상대적으로 이렇게 좋지 않았으리라.


히바의 미나렛


성 밖에 나가니 가로등이 거의 없어, 길이 껌껌했다. 길을 건너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동그란 광장에 동그랗게 펼쳐져있는 벤치에서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행색을 보니, 여기 사는 주민들이었다. 아줌마들은 더울 때 못다 한 수다도 떨고 있었고, 애 엄마들도 애를 앉거나 들쳐 없는 채 해가 없는 선선한 히바의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가운데는 초록색 조명으로 장식한 분수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해가 져도 아직 36도였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었다. 43도를 체험하고 나니 나조차 36도가 그나마 살만하게 느껴졌다.


히바성 밖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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