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겐치 갔다 오니 히바는 천국이네
더러운 먼지 구덩이 리얼 호텔은 의외로 투숙객들에게 아침식사 제공이 되었다. 호텔이 그렇게까지 엉망으로 관리되고 있는데, 호텔 전용 식당이 있는 거 보면, 이 호텔은 분명 개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체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없이 오는 구색만 갖춘 숙소임이 분명해 보였다. 아침을 먹으려고 내려가자, 호텔 로비 한 구석 소파에 어제 담배를 피우던 골초 청년 1명이 허접데기 담요를 덥고 자고 있었다. 주원이가 종알종알 수다를 떨어도 미동도 없는 걸 보면 밤새도록 로비에서 큰 TV로 친구들과 게임을 한 것이 분명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아까 소파에서 드러누워 자고 있던 청년이 정신을 차렸는지 까치머리를 한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청년의 멍 때리는 휴식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얼른 탈출하고 싶어, 멍 때리는 골초 청년에게 히바 가는 버스 정류장을 물었다. 피곤에 찌든 골초 청년은 의외로 히바 가는 버스가 어디 있는지 아는지 내 핸드폰에 버스정류장 위치를 찍어줬다.
10분 걸려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는 없고, 수많은 택시 호객꾼들로 정신이 없었다. 히바 가는 버스 어디서 타냐고 영어로 물어봤지만, 택시 호객꾼들한테는 '히바'밖에 안 들리는지 내 질문에 답은 안 하고 서로 호객행위를 하느라 바빴다. 평소 같았으면 히바 가는 버스를 기어코 찾아내 탔겠지만, 리얼 호텔이 준 피곤함으로 나는 관광 전투력이 매우 하강한 상태였다. 끈기 있게 달려드는 택시 호객꾼 아저씨 중 한 명의 택시에 쉬이 올라타, 적당한 가격에 히바로 떠났다. 엄마조차 리얼 호텔에 호되게 당해서, 내가 버스가 아닌 택시를 선택함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히바는 우르겐치에서 약 35km 떨어져 있다. 히바로 향하는 택시에서 우르겐치 시내를 살펴본 결과, 우르겐치는 관광지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볼 것도 없는 우르겐치 시내를 벗어나 40여분 달렸을까 드디어 히바 성이 나타났다. 10미터도 넘을 것으로 보이는 토성의 위용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끈기 있게 달려들었던 택시 호객꾼 아저씨는 우리가 택시를 타고나자 순한 양으로 돌아와, 열심히 우리가 부킹닷컴으로 예약해 둔 숙소를 진지하게 찾아주었다. 히바 성 안에는 게스트하우스나 호텔, 호스텔을 붙인 건물이 많았는데, 그 규모로 보아 이곳은 코로나 이전에는 관광업으로 번성하였던 곳이 분명했다.
히바성(구글에서 발췌)
호텔 근처에 도착해 택시에 내리자마자 건조한 열기가 엄습했다. 이 더운 날씨에 코로나 시국에 투숙객이 없었는지, 호텔 주인아저씨가 택시 소리만 듣고 문을 열고 마중 나왔다. 카운터에는 주인아저씨의 아들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앉아있었다. 호텔 주인아저씨의 아들과는 전날 리얼 호텔에 있을 때 이미 What's app으로 영어로 교류를 한 터라 안심이 되었다. 더러운 리얼 호텔과는 달리 이곳은 가족들이 사랑과 정성을 다해 관리했는지 깔끔 그 자체였다. 하얀 벽과 바다색보다 파란 커튼이 우즈베크 전통 분위기를 자아냈다.
호텔 주인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올라간 호텔 옥상에는 작은 벤치도 있어, 옥상 view도 즐길 수 있었다. 저 멀리 책에서 미리 본 미나렛과 모스크가 보였다. 이웃집 아이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지, 우즈베크에서는 당최 들을 수 없었던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주인아저씨는 뷰가 끝내주는 옥상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곧 웰컴 티를 가져다주겠으니 마음껏 옥상을 즐기라고 했지만, 열기에 몸이 녹아내리기 직전이었다. 이 건조함과 이 열기라면 내가 빨래를 해서 옷에 물기를 하나도 짜지 않은 채 그냥 방치해도 10분이면 마를 것 같았다.
우리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호텔방에 들어가 리얼호텔에서 입었던 모든 옷들을 벗어 빨래를 하고, 옥상에 널고, 차도 마시고, 각자의 침대에서 깨끗한 이불보를 덥은 채 한참을 뒹굴었다.
호텔 옥상에서 나와 주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