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결이 참 안 맞았던 우르겐치
줄담배 피우는 4명의 청년들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리얼 호텔의 호텔방은 너무 더러웠다. 카펫은 언제 청소기를 했는지 때와 먼지 속에 찌들어 있었고, 화장실은 화장지도 없을뿐더러 플라스틱 화장지 걸게 조차 고장 나 있었다. TV는 보지도 않을 거지만 역시 켜지지도 않았다. TV에서 나온 전선이 피복이 벗겨져 있어 위험해 보였다. 벽에는 A4용지로 메카 방향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키블라(qibla)가 인쇄되어, 허접한 스카치테이프로 벽에 간신히 매달려있었다. 이 모든 허접함과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호텔방의 와이파이는 빵빵하게 터졌다.
Qibla(구글에서 발췌, 리얼호텔과 상관없음)
우중충한 먼지구덩이 속에서 과연 잘 수 있을지 근본적인 걱정이 되었지만, 새로 숙소를 구하는 게 더 힘들 것 같았다. 우리는 짐만 숙소에 놓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분명 우르겐치 공항에 도착한 건 오후 3시였는데, 골초 청년 4명과 에어비앤비 때문에 이런저런 분쟁을 하느라 벌써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늘 우르겐치는 얼마나 더웠었는지, 오후 5시에도 길에는 훈훈한 열기가 남아있었다.
호텔 앞에는 우르겐치의 최대 관광지로 보이는 아미라 티무르 공원이 있었지만, 공원 근처에 있는 음식점들은 전부 아미라 티무르 공원 분위기에 호응하듯 햄버거와 핫도그만 팔았다. 어쩜 그렇게 햄버거와 핫도그만 팔 수가 있나. 도저히 채소 파는 곳은 없는 것 같아, 패스트푸드 전문점 옆 슈퍼에 과일이라도 사러 들어갔지만, 과일은 온통 쭈글쭈글하고 생기가 없는 게, 절대 사면 안 되는 비주얼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과일의 천국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지역 나름인가. 야채 쪼가리라도 파는 음식점을 찾아 나선 지 20여분이 지나서야 규모가 있는 샤슬릭 음식점을 드디어 찾을 수 있었다. 규모가 좀 큰 레스토랑에 가야 사이드 메뉴에 샐러드라도 있으리라.
핫도그와 햄버거만 잔뜩 팔던 거리
식당에 앉은 엄마는 이미 지쳐있었다. 수박 말고는 아무것도 입맛을 당기는 메뉴가 없다고 했다. 주원이는 식당에서 나온 오렌지주스를 2컵 연달아 마셨다. 10장도 넘는 메뉴의 가장 끝 페이지 사이드디쉬 코너에 있는 '썰어놓은 수박'과, 빵, 샐러드 두 접시를 시켰다. 우리 모두 탈수 증상이 왔는지, 수박만 연신 먹었다. 썰어놓은 수박은 10,000 숨(한국 1,350원)이었는데 타슈켄트 초르수 시장에서 이 가격이면 커다란 수박을 한 통 살 수 있었지만, 현재 이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질 수가 없었다. 샐러드를 시킬 때 하나는 토마토오이샐러드, 또 하나는 Japan style salad를 시켰는데 후자에 간장 양념을 해가지고는 고기가 잔뜩 들어있어서 야채를 조금씩 분리해서 건져먹어야 했다. 식당마저 우르겐치 여행 쉽게 보지 말라는 인상을 온몸으로 주었다.
우르겐치에서 먹은 수박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다. 식당에서 조금 걸으니 아미라 티무르 공원이 나왔다. 텅 빈 것 같은 우르겐치 시내와 다르게, 아미라 티무르 공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더워서 한낮에는 집안에만 있다가, 해가 지니 야외 육아도, 야외 데이트도 모두 시작되는 것 같았다. 중앙아시아 공원에는 항상 있는 커다란 대관람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