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5살 짜리 아이와 70살에 가까운 친정엄마와 우즈베키스탄 배낭여행한 여행기의 일부입니다)
"여기 호수가 있거든요. 거기서 보트 타실래요? 제 지인에게 돈을 좀 얹어주면 보트 탈 수 있어요. 원하시면 거기서 수영도 가능해요."
식사를 마치고 택시에 올라타자 아저씨가 말했다. 아니, 이런 황량한 사막 속에 호수가 있다니, 또 보트는 뭔가. 아저씨의 택시는 황량한 흙길을 달려 어느 호수변에 도착했다. 그곳은 우르겐치에서 가까운 악차콜 호수(Akhchakol lake)였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녹슨 보트가 이미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두두두두두두두............................
아저씨는 택시 앞에서 기웃대는 우리에게 손짓하며 뭐라고 했지만 배의 시동 소리가 워낙 대포 같아서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미화 10달러에 아저씨 포함해서 우리 모두 탈 수 있다고 했다. 호수가 크긴 컸지만, 솔직히 경치랄 것이 볼 것도 없고, 마치 우리 농촌에서 농업용수를 보관하는 엄청 큰 저수지 같았다. 호수 부근에는 나무도 심어져 있는 게 전혀 없어, 45도의 건조한 바람이 휘휘 불었다.
녹슨 보트
시동을 건 보트를 타자 이미 현지인들이 잔뜩 타있었다. 우리가 타고나서도 보트가 출발하지 않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어떤 승용차에서 휘황찬란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보조하는 여자들 2명과 함께 보트로 오고 있었다. 보트에 타고 있는 현지인들도 자세히 보니 신랑과 신부 각각의 친구들 같았다. 잠시 후 사진기사도 탔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지역명소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호수가 바로 카라칼팍스탄의 명소인 것 같았다.
신부가 타자 보트가 드디어 출발했다. 우두두두두두.... 나는 기름 냄새와 굉음을 피해 배 뒤쪽으로 이동했다. 배가 출발하면서 바람도 살짝 불긴 했지만 여전히 너무 더웠다. 주원이의 머리가 순식간에 땀으로 흥건해졌다. 배는 가도 가도 망망대해였다. 신랑과 신부 들러리들은 배에서 등 돌리고 각자 호수만 바라보며 내외하고 있었다. 수줍은지 외국인인 우리에게도 절대 말 걸지 않았다.
절대 신랑 쪽 들러리와 얘기도 안 하는 신부 측 들러리 혹은 신부 친구들
배 앞쪽에 가니, 신랑과 신부는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건조한 호수바람이 휘휘 부는데, 흔들리는 배 위에서 사진작가의 주문에 따라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둘 다 긴장했는지, 잘 웃지 않았다. 우리도 흔들리는 배에서 균형잡느라 그냥 서있어도 힘든데, 신랑신부는 얼마나 힘들까. 망망대해 같은 호수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침착하게 사진찍어가는 신랑신부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신랑신부웨딩촬영
호수 중간에 도착하자, 선장과 택시기사 아저씨는 주원이를 힐끗 보더니 자기 손자 대하듯 조종칸으로 주원이를 초대했다. 조종 칸은 바람도 들어오지 않아 정말 더웠다. 택시기사 아저씨도 보트 타서 좋았는지 흥이 나 있었다. 주원이도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아 조종 키를 돌려보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세계 테마 기행에 보면 원래 관광코스 말고, 진짜 현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체험하는 내용이 많은데, 바로 이 보트 투어가 거기에 가까운 것 같았다.
조종칸에 진입한 주원이와 친정엄마
30분도 채 안 걸린 보트 투어가 다시 땅에 도착했을때, 나는 비로소 기름 냄새와 굉음과 녹슨 보트를 떠나, 마실 물과 에어컨이 나오는 택시로 돌아갈 수 있음에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