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바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 찾고 찾았던 루프탑에서 노을 보기

by 박수소리

카라칼팍스탄을 빠져나오는 길에서 나는 관광을 더 이상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에 드디어 마음이 편해졌다. 하루의 긴장이 모두 풀려 숙소 가는 길에는 살짝 졸리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길에 창밖을 보니 우리가 거쳐왔던 모든 길들이 진정한 사막이었다. 산도 하나 없는 사막 그 자체. 나중에 타슈켄트 돌아와서 숙소에서 네덜란드의 은퇴한 아저씨 3인방을 조식을 먹을 때 만나게 되었는데, 그 아저씨들은 우즈베크 사막길을 자전거로 일주를 했다고 한다. 이 더위에 애랑 엄마를 사막에 데리고 온 나만 미친 게 아니었다. 현지 우즈베크 사람들은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외국인들이 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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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옆은 사막뿐



아침과 점심으로 둥근 빵과 잼만 주야장천 먹다 보니 신선식품이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돌아가는 택시에서 아저씨한테 듸냐(우즈베크 멜론)를 좀 살 수 있겠냐고 하니, 돌아가는 길에 마침 지인이 하는 노점이 있다고 했다. 정말 국도 같은 곳을 달리다 보니 국도 옆 뜬금없는 곳에 듸냐와 수박 파는 노점들이 3~4개 무리를 지어 있었다. 택시기사 아저씨 또한 이곳을 지날 때마다 집에 듸냐를 사 간다고 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주차를 하더니 먼저 내려 아는 지인에게 악수를 건넸다.
"아살림 알레이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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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멜론 노점상 무리


아마도 이곳은 듸냐 수박 밭인 것 같았다. 매점마다 간이침대를 놓고, 주인은 손님이 없을 때는 간이침대를 의자 삼아 쉬면서 지나가는 차가 오면 파는 듯했다. 듸냐도 둥근 듸냐, 럭비공 같이 생긴 듸냐 등 하나같이 크고 종류도 다양했다.
우리는 듸냐 하나를 사고, 또 하나는 현장에서 먹고 가기로 했다. 우리가 듸냐를 고르자, 주인아저씨는 무게를 재서 정확한 가격을 측정하고, 하나를 칼로 슥슥 잘라서 하나씩 건네주기 시작했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람 머리통 만한 듸냐도 1통에 우리나라 돈으로 천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우즈베크에서 듸냐를 먹을 때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화점 과일 코너에 한 통당 적어도 2만 원에 살만 한 명품 과일을 득템 하는 듯한 기분을 매번 느꼈다.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서서 듸냐를 받자, 간이침대에 앉아있는 주인들이 냉큼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고, 우리를 철제 간이침대에 나란히 앉혔다.
아저씨가 건넨 듸냐도 이 더위에 미지근했지만 당도는 정말 끝내줬다. 듸냐를 먹고 나서 껍질을 버리는 쓰레기통이 따로 있는 걸 보니 이곳에 잠시 정차하고 듸냐를 먹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수분이 많은 듸냐를 먹느라 주원이는 얼굴이며, 팔이며, 신발이며 듸냐즙으로 온통 끈적끈적해졌다. 순식간에 듸냐 한통을 택시기사아저씨와 우리 셋이 나누어 먹고, 주인아저씨가 건넨 주전자 물로 손을 씻었다.
너무 덥기만 했던 카라칼팍스탄의 여정의 끝에 맛있는 듸냐를 만나니, 더위로 띵했던 머리에 분무기로 물 뿌린 듯 리프레시되는 것 같았다.

히바에서의 마지막날 저녁.
엄마는 카라칼팍스탄 택시투어가 끝나고 숙소에 내리자마자 호텔에 들어가 에어컨을 틀고 샤워를 하더니 정말 뻗어버렸다. 저녁 먹을 시간인데도 한 발짝도 나가기 싫다고 했다. 엄마는 끼니때가 되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점심에 먹다 남은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계란 만두가 나왔던 식당에서 싸왔던 라그만과 빵 쪼가리들로 저녁을 때우고 누워있을 모양이었다. 더위가 엄마의 여행 본능을 모두 빼앗아가 버렸다.
나는 엄마를 쉬게 해 주기 위해 느지막이 주원이를 유아 차에 태우고 어제 점심을 먹었던 히바의 아름다운 식당 테라스에 다시 갔다. 여전히 시원하진 않았지만 3층 루프탑에 자리 잡으니 전망이 탁 트여 히바 성이 다 보였다. 해가 지면서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히바 성의 조명도 하나씩 켜져 낭만을 더했다. 이 식당은 가격이 현지 식당에 비해 2배는 비싼 만큼, 외국인 여행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듯했다. 루프탑에는 히바를 즐기고자 하는 외국인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딱 봐도 호주, 미국,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로 루프탑은 가득 차 있었다. 노을이 물러가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루프탑에서 피리 종류의 서양악기를 든 종업원이 라이브 연주가 시작되었다. 연주하는 노래도 모두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는 노래들이었다. 스팅의 잉글리시 맨 인 뉴욕을 히바에서 들을 줄이야. 나와 주원이는 아름다운 히바의 낭만을 느끼고자 루프탑에서 춤을 추었다.
히바는 더웠고, 그래서 정신 못 차리게 힘들었지만, 마지막 날 테라스 루프탑이 낭만을 먹여주는 덕분에 히바가 아름다운 낭만 여행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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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의 루프탑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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