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예매 때문에 마음고생한 알리

히바에서 부하라로

by 박수소리

우즈베크 기차는 모바일과 웹에서 예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기차역에 갈 필요가 없다. 특히 우리처럼 러시아어도, 우즈베크어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예매창구에서 철도공무원 하고 일일이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하는 게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나는 히바에 있는 동안 에어컨 나오는 호텔방 침대에 누워 히바에서 부하라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노력했다. 기차 시간표를 조회하고, 좌석을 고르고, 좌석에 각자의 여권번호와 여권명을 넣는데 모두 성공했지만, 모바일 앱을 당최 어떻게 만들어놨는지 도저히 비자카드로 결제가 계속 실패했다. 결제 실패를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결국 호텔 카운터에 핸드폰 보면서 놀고 있는 호텔 사장의 대학생 아들 알리에게 앱을 들이밀었다. 타슈켄트에서 공부하다 여름방학 때 히바 고향집에서 아버지를 돕던 아들인 알리는 히바지역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비교적 유창한 영어로 내 핸드폰의 앱을 몇 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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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레일웨이 앱(Uzrailway tickets - Google Play 앱)


"아무래도 이거 우즈베크 국내 카드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제 카드로 대신 결제해 볼게요."
앱을 가지고 자신의 카드로 결제해 보려고 노력하던 알리는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말했다.

"아무래도 앱이 지금 결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방법을 찾아볼게요."
우리가 관광을 다녀온 동안, 알리는 온갖 온라인 수단을 동원해서 기차표 예매를 도모했지만 실패했다. 안 된다면 안 된다고 하면 될 것을, 알리는 관광 갔다가 몇 시간이고 숙소로 돌아오지 않는 우리를 기다리며 혼자 마음고생했다. 고민 끝에 알리는 우리 기차표를 끊어주려고 직접 이 땡볕에 기차역에 다녀왔다고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비자카드로 결제하는 건 모바일앱은 될 것처럼 하면서 절대 안 되지만 인터넷 웹사이트(JSC « O’zbekiston temir yo’llari » | O`zbekiston temir yo`llari (railway.uz)에서는 비자카드로 결제가 가능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알리가 우즈베크의 이 더운 여름에 기차역에 갈 필요도 없었고, 노트북 가지고 다녔던 내가 에어컨 나오는 호텔방에서 휘리릭하는건데.

그렇다고 웹사이트로 기차표 조회하는 게 그렇게까지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웹사이트는 마치 영어, 우즈베크어, 러시아어 3개 버전으로 조회가 가능할 것처럼 꾸며놨지만, 막상 영어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넣으면 지역명은 또 키릴 문자만 먹히는지 어쩔 땐 조회가 순조롭게 되지 않는다. 그냥 웹사이트 구조를 영어로 파악하고 러시아어로 진행하는 게 가장 빠르고 속편 하다. 히바에서 부하라까지는 절대적인 거리가 있고, 고속철도 아니라서 7시간 49분이나 걸린다. 그 오랜 시간을 버티려면 미리 식사나 간식거리를 충분히 사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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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에서 부하라로 가는 기차표(8시 28분 출발, 16시 17분 도착, 일등석 141490 솜)


이튿날 아침, 우리는 짐을 다 싸놓고 로비에서 기다렸다. 어제 카라칼팍스탄 택시투어를 신청할 때 호텔에서 일부 중계료를 떼는 조건으로, 알리가 우리를 기차역까지 태워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알리는 호텔 사장님인 아빠의 검은 승용차를 끌고 나왔다. 우리는 알리에게 부탁해서, 기차역에 가는 길에 히바 성 매점에서 기차에서 먹을 자두, 바나나와 물을 좀 샀다. 히바와 부하라 사이를 오가는 기차는 3량짜리 아주 작은 기차이기 때문에 매점 칸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기차역에 과자를 판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더라면, 주원이를 하마터면 굶길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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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 부하라 열차


우리가 예매한 좌석은 1등석이었는데, 좌석이 그만큼 넓고 안락했다. 가장 비싼 좌석이 141490 숨이었으니, 한국돈으로 한 사람당 16289원 정도인 셈이었다. 히바 역은 아주 깔끔했다. 히바 역에 들어가기 전 우리의 모든 가방과 유아 차는 필히 수색대를 통과해야 했는데, 히바 관리인들이 한국인인 우리를 보며 아는 한국어를 몇 마디 읇조리며 반가워했다. 나는 우즈베크 기차를 처음 타는 만큼 기차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엄청 긴장했는데, 히바 역의 특성상 오고 가는 기차가 별로 많지 않아, 히바 역에 도착하자 우리가 딱 탈 그 기차만 덜렁 있었다. 기차는 타자마자 너무 더웠으나 기차가 출발하자 에어컨이 덥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나와주었다. 부하라로 가는 동안 나는 바깥 풍경을 카메라로 찍으려 했으나, 찍고 또 찍어도 사막이어서 결국 출발 10분 만에 카메라도 내려놓고 푹 쉬게 되었다. 기차 마니아인 주원이는 안락한 기차를 타서 너무 행복해했지만, 바나나와 자두로 대충 배를 채우자, 기차 좌석을 침대 삼아 단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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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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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석에서 잠자는 주원


도착해 보니 오후 4시를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부하라역은 딱 보기에도 히바보다는 복잡했다. 부하라 역에는 고속철도 주차되어 있는 걸 보니, 부하라부터는 고속철이 운행되는 듯했다. 그럼 우리가 히바에서 타고 온 기차는 3량짜리 깔끔한 무궁화호라고 보면 되려나. 부하라가 풍기는 이미지도 그랬다. 히바가 소도시라면 부하라는 중소도시는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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