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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Dec 22. 2020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독서, 그중 나의 독서에 대해

유학생의 책 읽기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독서가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책을 읽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감정이나 사고의 필요로 인해 찾아 읽게 되는 책, 지식 습득을 위해 읽는 책, 세상에 대한,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읽는 책,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는 책, 팬심으로 읽는 책, 학교에서 시켜서 읽는 책, 신뢰하는 사람의 추천으로 읽는 책,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읽는 책, 시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고전이 되었는데 그 명성이 가지는 권위를 나도 신뢰하여 읽는 책, 남들은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줄 몰랐으면 하며 비밀스럽게 읽는 책 등등.


나의 책 읽기는 어떠한가. 분명 위에 나열한 이유들 이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책을 읽었을 것이다. 내가 '책 읽기'를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인식한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하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나에게 책은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하는 것, 어른들이 읽으면 좋다고 하니까 읽는 것, 재미가 있으니까 읽는 것, 읽고 있으면 친구들이 가만히 놔두길래 읽는 것이었다.


내가 책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확장하는 재미를 깨달은 것은 대학교 때였다. 학교 도서관 2층, 동아시아 서적들이 가득한 서가에서 한국 소설로 가득한 칸을 발견했을 때의 그 희열은 2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공항으로 마중 나온 부모님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반가움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내가 한국의 말과 정서에 목말라 있었을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그렇게 김애란의 <비행운>을 시작으로 그곳에 있는 책들 중 지명도 있는 것들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한국 소재의 도서관이 아니기 때문에 책들의 종류나 장르에 제한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나는 읽을 책을 고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선택지가 많으면 좋지만 너무 많아지면 오히려 선택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 우리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다수의 심리학 연구도 뒷받침하고 있는 사실이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조금씩 기초를 다지다 보니 책을 보는 눈이나, 내가 원하는 책을 찾는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게 느껴졌다. 나의 책 읽기를 형상화해보면, 한 층씩 쌓고 있는데 옆으로도 쌓고, 위로도 쌓고 있는 모양새다. 가끔 위로만 너무 쌓은 것 같으면 밑층으로 돌아가 한 번씩 두들겨보며, 즉 재독서를 통해 내 기초를 확인한다. 옆으로만 쌓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위로 쌓으면서 시야를 확보하려고 할 때도 있다.


 층씩 쌓다 보면 건물이 되는데, 이는 결국은 하나의 관심사로 수렴한다. 건축이랄지, 인간 심리랄지 '키워드'라고 불릴만한 것들 말이다. 이 건물들은 종종 다리로 이어지며 이는 두 가지 관심사에 대한 독서가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뜻한다.


지난 몇 해 간의 독서 경험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읽는 책의 수보다는 어떤 책을 어떻게, 언제 읽느냐에 초점을 두고 독서를 하자는 것이다. 또한, 가지 유념할 것은 책장은 유한한 공간이며, 괜한 욕심을 부려봤자 고뇌와 번민만 늘어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고뇌와 번민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 내 서재 정도의 넓이가 무슨 책이 어디 꽂혀 있다는 것을 내 머릿속에 대강이라도 갈무리해두기에 적절한 공간인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늘릴 생각이 없다."
- 박완서, <한 길 사람 속>, p. 288


박완서 선생님을 본받아보려 하지만, 나는 아직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일개 중생일 뿐이기 때문에, 좀 더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책을 읽는 속도가 꽤 빠른 편인데, 우선 한 번 쭉 읽고 다시 읽자는 마음으로 읽는 편이다. 그러다가도 가끔 활자를 미끄러지듯 훑는 눈이 뒤돌아갈 때가 있다. 어떤 단어나 문장에 꽂히면 표시해 두었다가 나중에 필사 노트에 옮겨 적는데, 이게 아주 조금씩인 것 같아도 역시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나중에 보면 양이 꽤 되어 보인다.


내가 비록 등장인물의 이름과 정확한 줄거리는 잊어버릴지라도, 그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나 사고의 흐름 같은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내 안에 남아있을 거라 소망하며 오늘도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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