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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팽나무 Nov 05. 2020

채움의 계절

                                          

병뚜껑을 열자 잘 익은 가을 냄새가 물씬하다. 향긋하고 달큼한 내음을 먼저 눈으로 맡는다. 햇살로 버무린 것일까. 때깔이 곱다. 붉은 노을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어디 햇살뿐이겠는가. 맑은 바람도 켜켜이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천연재료, 그건 언니의 정성이다.


 잘 익은 무화과를 하나하나 손질하여 사랑이란 감미료를 듬뿍 넣고 조려낸 무화과잼은 그래서 더 맛깔스러워 보인다. 식빵을 구운 다음 잼을 듬뿍 발랐다. 바삭한 식빵과 달콤한 잼이 어울려 영혼이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그동안 먹어본 딸기잼이나 포도잼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화과잼은 색다른 맛이다. 잼을 만든 언니가 요술을 부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감칠맛이 난다.


 바닷가 근처 마을에 사는 큰언니는 한때 도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도시를 사랑했다. 하지만 고향이 바닷가인 형부를 따라 바다 여인이 된 지 오래다. 큰언니는 유독 정이 많아 나눠주길 좋아했다. 무화과 잼도 동생들을 위한 언니의 마음이다. 사실 언니 집에는 무화과나무가 없다. 무화과는 언니가 마을 사람들에게 얻은 것이었다. 요즘 농촌 현실이 그렇듯이 언니가 사는 마을도 노인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이 귀하다 보니 언니의 일상이 바빠진 건 당연했다.


 언니는 노인들을 차로 병원에도 태워다 드리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모양이었다. 말동무가 되어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워낙에 정 많은 시골 노인들은 언니의 수고에 답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챙겨준다고 했다. 가을이면 호박과 고구마를 많이 받는데 무화과도 그렇게 생긴 거라 했다. 언니는 혼자 맛있는 걸 먹기가 미안하다더니 잼을 만들어 보낸 것이다. 잼에는 언니의 정성과 사랑뿐 아니라, 시골 노인들의 인정까지 담겨 있으니 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 계절, 도시는 다소 황량하지만 여백 사이로 흐르는 사람의 정이 느껴진다. 가을은 채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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