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풍경은 스냅 사진 같다. 나무도 눈에 띄게 실팍해지고 꽃도 시원시원 핀다. 풀은 거침없이 허공을 움켜잡는다. 매일 다른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정을 이루었던 이팝나무는 이제 산딸나무에 바통을 넘겼다. 몸을 풀기 시작한 산딸나무가 쉼 없이 꽃을 낳는다. 향긋한 산고가 도시의 아침을 신비롭게 한다. 바람개비 꽃이 초록 이파리 위에서 발레리나처럼 나풀거린다.
꽃은 색깔을 초월한다. 빨강이든 노랑이든, 분홍이든 하양이든 아름답다는 일반적인 찬사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꽃 색깔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건 상상의 한계 때문이다. 사람의 머리로 만들어낼 수 없는 색을 꽃은 순식간에 조합해버린다. 혼합과 배합의 달인이다. 계산 없이 이루어지는 묘한 색의 조화는 꽃이 가진 특권이다. 금계국의 샛노란 꽃잎과 장미의 새빨간 빛깔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생각하는 사이에도 꽃은 색을 만든다. 꽃은 사람의 뭉친 마음을 단숨에 풀어버린다. 머뭇거림이 없는 꽃의 언어다.
꽃이 펼쳐놓은 문장 안으로 들어가면 쉼표와 마침표를 잊어버린다. 행간을 건너뛸 사이도 없이 가슴에 콕콕 박히는 느낌표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심연에 발자국을 남기기 때문이다. 숨겨두었던 비밀을 와르르 쏟아내 버리고 싶은 꽃길에선 눈보다 마음이 먼저 환해진다. 느낌표 속에서 헤매다 물음표만 남긴 채 총총히 꽃의 문장을 걷는다.
천변은 수시로 주인이 바뀌고 있다. 지난달, 화르르 피어난 벚꽃은 서사의 중심이었다. 곧 분홍 진달래의 정령들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것도 잠시, 지금은 장미의 빨강이 시를 쓰는 중이다. 주위에 있는 금계국이 후렴구를 넣으며 꽃의 언어는 시나브로 절정을 향해 달린다. 머잖아 전설을 품은 꽃 능소화가 주황색 소문을 퍼뜨리면 천변은 꽃의 언어로 채워질 것이다.
잠깐 사이, 장미가 결연히 빨간 붓을 집어 든다. 그리곤 울타리에 일필휘지, 5월의 문장이 완성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