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수학공식이 아니다.
사람은 내가 준 것에 더 민감하기 마련이고, 주고받는데 익숙하다 보면 받은 것에 비해 준 것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준 것에 민감하지 않고, 상대에게 받은 것에 더 민감할 수 있다면 관계 맺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대방과 나의 관계에서 상대방은 자신이 내게 무엇을 베풀었는가, 혹은 양보했는가, 한 발 물러서 주었는가 등을 더 잘 기억한다. 나에게는 받은 것이지만, 남에게는 준 것이 된다.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온도차가 갈등의 불씨가 된다.
상대방에게 받은 것을 더 민감하게 여길 수 있는 방법은 '감사일기'를 쓰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일상에 대한 감사, 인간에 대한 감사, 그리고 행위에 대한 감사다. 이 3가지 분야에 대해 감사할 수 있으면 더 이상 '감사할꺼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감사일기를 습관화하는 방법은 노트와 샤프 하나를 손이 가장 잘 닿는 곳에 두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가장 먼저 감사일기부터 쓰는 것이다.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이 없을 때까지 쓰되, 시간은 5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꾸미거나 강조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하지 말고 그저 감사를 느낀 일들을 주욱 떠올려보고 생각나는 대로 써보면 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이 아니며 철저히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기에 자기 검열과정을 최소화하면 가장 이상적이다. 가급적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을 추천한다.
일상에 대한 감사는 나를 존재할 수 있게 해 주고, 하루의 삶을 시작하고 또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행복하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자연 속에 존재할 때 가능한 것임을 깨닫고 그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일상에 대한 감사는 언제든 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날씨가 맑은 날은 맑은 대로 얼마든지 좋은 일이고 감사할만한 일이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조차도 충분히 감사할만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으면 된다.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 맑고 청명하고 따뜻한 날씨, 일하고 생활할 직장과 집이 있다는 것, 사랑을 주고받는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일상에 대한 감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상적인 부분에 감사하지 못한 채 매일을 당연함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내가 이미 가진 것들이 예전에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던 것임을 되돌아본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들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감사는 인간 존재 본연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모두에게는 각양각색의 세상이 존재하며, 독특한 삶의 궤적 속에서 독특한 사건들을 보고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똑같은 콘서트장에 있어도 철수는 하품을 하고 지루해하지만 영희는 콘서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생생한 진동과 희열을 느낀다. 같은 수업을 듣더라도 영철은 귀를 쫑긋 세우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지만, 미애는 수업시간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30초에 한 번씩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세상에 존재했지만 서로 다른 세상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비교하기 너무 어려운 존재다. 비교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단일화된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달라서 단일 기준으로 분류, 비교, 판단하는 것은 잔인하고 불합리하다. 한 순간도 자리에 앉아있지 못했던 한 소녀는 주의력 결핍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끊임없이 들썩이는 춤에 대한 재능과 열망을 알아본 사람을 만나 유명한 댄서로 거듭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영 전 종목을 통틀어 23개의 금메달을 딴 마이클 펠프스 선수나 유명한 가수인 저스틴 팀버레이크 역시 ADHD로 어려움을 겪은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공부, 학습, 독서와 같은 어떤 행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는 분명한 장애일 것이나, 그런 그들을 함부로 틀렸고 잘못되었다 판단하기 전에 타인과는 분명히 다른 그들만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달시켜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존중의 역할이다. 인간에 대한 감사는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영역이다. 조건 없이 스스로를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존감 또한 인간에 대한 감사를 통해 강화될 수 있다.
첫 번째, '돈'
타인을 존중할 수 있으려면 함부로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단일 비교 기준의 첫 번째는 단연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능력=권력=모든 것'의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도 회자되지만 이 또한 돈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은유다. 부유한 사람은 존중받고,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열등감에 시달린다. 부를 쌓은 이면에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성공전략, 치밀한 계획과 실행 같은 것들이 존재했을 것이며, 그런 노력과 능력에 대한 존중은 잘못될 것이 없다. 하지만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무시받는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본인 스스로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부자들에 대한 적대감이나 공격성만 내뿜는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이 그냥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으로 무시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위치를 자꾸만 비교하게 만드는 사회상이나 주변의 인식 등이 존재한다. 스스로 열등감을 생산해내는 사회적 분위기에 매몰되는 것은 인간에 대한 감사를 체득하는데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데, '수단을 얼마나 가졌는가?, 수단을 얼마나 벌어들일 수 있는가?'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재단되고 비교되는 상황이 만연되어 있다. 경험은 개인의 세상을 건설하며, 끊임없이 보고 듣고 뉴스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자신만의 세상의 디테일을 구성한다. 자연스럽게 열등감을 생산하는 사회 속에 살다 보면 자기 스스로도 열등감의 노예가 되고 만다. '부'를 기준으로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관하고, 실패한 인생으로 여기게 하는 사회상이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번째, '학벌'
두 번째 기준은 '학벌'이다. 예전에는 대졸자가 고졸자를 무시하는 문화였다면 지금은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이 일반적인 대학 또는 지방대학을 나온 사람을 무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무시'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일명 '지잡대'를 나온 사람을 마음속으로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거나, 그들을 2류 인간으로 여기고 관계 맺을 수 없도록 마음의 선을 긋는 태도가 분명 존재한다. 공부에 뜻이 있고, 학업에 매진하는 사람,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고차원적인 사고나 학문적 깊이를 높이고자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박사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이 그들의 성취나 업적에 대해 존중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공부'나 '학습'이라는 행위에 장점이나 흥미를 가진 것은 아니며, 예술이나 스포츠, 혹은 블루 칼라로 명명되는 수많은 분야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세 번째, '직업'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문'을 중시하고 '무'를 천시하는 문화가 존재했다. 그런 경향은 현대사회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같은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용어들이 사회적으로 쓰임 받게 된 것 자체가 직업의 귀천을 '좋은 것, 고귀한 것'과 '나쁜 것, 천한 것'으로 나누는 흑백논리와, 비교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차등을 두려 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문화에서 파생된 사회적 현상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으며, 필요하지 않은 직업이 사라질 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은 필요성이 인정받은 일들이다. 단순히 현장 노동자라고 해서, 지적 소양이나 학문적 깊이가 필요하지 않은 일, 혹은 임금 수준이 낮은 일이라고 해서 가치 없는 일로 치부하는 사고방식은 타인에 대한 존중을 가로막는 왜곡된 사고방식이다.
인간에 대한 감사는 인간 존재 본연에 대한 존중에서 나오며, 그 시작은 '돈'과 '학벌', '직업' 이 3가지 일반화된 기준을 잣대로 타인 또는 자신을 무비판적으로 비교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자연에 대한 감사나 두 번째, 인간에 대한 감사는 감사일기를 처음 쓸 때는 발견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마지막 세 번째, 행위에 대한 감사가 가장 일반적이고 흔하게 할 수 있는 감사다. 행위에 대한 감사는, 문자 그대로 나에게 일어난 어떤 좋은 일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 팁이 있다.
첫 번째 팁, 대단한 일을 바라지 않는 것
첫 번째 팁은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승진, 수능이나 내신 1등급, 복권 1등 당첨, 부동산이나 주식 급등과 같은 일들은 인생에서 흔히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다.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라고 했다. '감사할만한 일'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을 낮추면 사소한 일들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퇴근 후에 아내가 차려주는 뜨끈한 밥상, 아이들이 아빠 아이스크림도 사 왔다며 스크류바 하나를 건넬 때, 아침에 몸살 기운에 일어나지 못했는데 첫째 아이가 막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었을 때, 출근길 바쁠 때 녹즙 한 잔을 내미는 아내가 있을 때, 감기 기운이 있어 추울 때 따뜻하게 데운 쌍화탕을 줄 때, 오늘 본 소설이 재미있었을 때, 손흥민 선수가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전반 5분 만에 골을 꽂아 넣었을 때, 이런 기분 좋은 일들은 얼마든지 감사를 느낄만한 '좋은' 일들이다.
두 번째 팁, 있을 때마다 기록하는 것
감사를 표현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정과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다. 크고 급격한 감정 변화가 함께한 사건들은 기억에 더 오래 남기도 하지만 작은 일들은 그 순간이 지나면 아예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일단 사람의 기억 방식 자체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기억하는데 더 특화되어 있다. 나쁜 일은 '불안'이라는 큰 감정을 자극해 다음에 또다시 똑같은 상황을 겪지 않도록 기억에 남기지만, 좋은 일은 그저 기분 좋은 일로 지나칠 뿐, 그 상황을 반드시 기억에 남길만한 동인이 떨어진다. 그냥 기억하는 대로 살다 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들만 기억에 잔뜩 남아있는 이유다. 나에게 좋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에 대한 의식적인 기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사소한 '받은 것'들은 절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반복은 의식적인 행위를 무의식의 영역에 회로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그 회로를 '습관'이라고 한다. 쉬운 일이 반복하기도 쉽다. 스마트폰 메모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은 스프링노트에 작은 펜을 끼워두는 것도 좋다. 단편적인 사실을 넘어 감사꺼리를 늘려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재미있는 소설을 봤다면 그 소설을 쓴 작가에게 감사할 수 있지만, 그 책을 소개해준 사람, 혹은 구입하고 읽어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의 포함된 모든 과정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1. 준 것에 대한 인식 전환 : 베푸는 것도 나를 위한 것
관계를 위해서는 내가 준 것에 덜 민감해지기 위한 방법도 익힐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준 행위 자체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봉사활동은 봉사대상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평가를 높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호의를 베푸는 것 또한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호의를 입은 상대방은 마음의 짐을 갖게 된다. 평소 내게 잘해주던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2. 준 것을 하나하나 세지 않는 것
두 번째 방법은 내가 얼마나 주었는지 하나하나 카운트하지 않는 것이다. 관계의 저울을 양적으로 맞추려 할 때 갈등은 끊어지지 않는다. 관계에서의 Give & Take는 물건값을 지불하거나 대출금을 갚는 것과는 다르다. 질적이든 양적이든, 같은 가치가 오고 가는 경우가 없다. 가치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뿐인 쌍쌍바의 반을 뚝 잘라 아빠에게 내미는 아이의 마음은 500원짜리 쌍쌍바 가격의 1/2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절반을 아빠에게 주는 것이다.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것 중에 '관심'이 있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위한 무언가를 해줄 '마음의 동력'이 생긴다. 사소한 캐러멜 하나라도, 내 것을 살 때 다른 누군가의 것을 함께 샀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게 온전히 쏟을 마음의 지분을 상대방을 위해 나누어 준 것이다. 하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겨우 캐러멜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온도차가 존재하기에 내가 준만큼 돌려받겠다는 생각은 관계를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은 내가 양보했으니 내일은 상대방이 양보하겠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관계는 수학공식이 아니다. 어제도 양보했지만 오늘도 또 양보해야 할 수도 있다. 때때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상대방은 이미 돌려줬다고 여길 수도 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에 대한 가중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철수는 내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영희는 함께 식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다. 철수는 자신의 가중치에 따라 영희의 의견을 존중하고 잘 들어주었지만 영희는 저녁식사 약속에 나오지 못한 것으로 더 큰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상처는 이처럼 주관적으로 생긴다. 그래서 관계에서는 피해자는 있되, 피해를 준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떤 일에 상처를 받았다면, 그 섭섭한 마음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표현하지 않으면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상대방의 분위기가 무거운 것을 보고 '내가 뭘 잘못했나?'하고 고민하지만, 정작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약간은 부담스러운 대화도 서로 편하게 할 수 있는 스킬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