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주된 이유 : '성격' 차이
좁은 공간에서 24시간 함께 하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더 이상 물어볼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영원한 가상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방법뿐이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중독과 구분하기 어렵다. 수백 편에 달하는 애니메이션을 정주행 하는 것처럼 무한정 이곳이 아닌 그 어딘가로 가상여행을 떠난다. 현실도피 외에는 지독한 답답함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사람은 있으되 말은 없어진 지 오래다.
많은 연인이나 부부가 성격 차이를 이유로 헤어진다. 성격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누군가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그 답이 있다.
“저는 외향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수줍음이 많아요. 저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해요. 저는 자상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아요. 저는 걱정이 너무 많은 것이 걱정이에요.”
인간의 개체수만큼 성격은 다양하다. 성격은 어떤 사람을 규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성격을 형성하는 배경 역시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지역색이 달라왔고 비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전라도 출신인 나의 아내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많이 한다. 음식이 남을지언정 부족한 것은 큰 실례로 여긴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싫어하는 것만 아니면 맛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다만 먹던 음식들이 간이 강한 것들이어서 싱거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 음식에 관심이 없는 만큼 먹거리에 지출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맛집을 찾아가 줄을 서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내는 같은 음식을 두 번 먹지 못한다. 매 끼니 다른 것을 먹어야 하고 같이 먹어야 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반면에 나는 혼자서도 잘 먹는다. 아니, 혼자서 먹는 것이 더 편하다. 나에게 밥이란 간단히 차려서 빨리 먹고 에너지를 보충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물론 이런 차이가 지역색에 의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이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기질도 있을 것이며, 진화과정에서 만들어진 남녀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지역 간의 음식에 대한 관점 차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다투고 신경전을 벌이다 지쳐간다. 큰 실수나 상대방을 배신하는 충격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문제들이 쌓이고 서로 지쳐가다가 관계는 끝이 난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섭섭함이 누적되고 이것은 상대방의 사랑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의 의심에 대한 타당성을 찾으려 하고 그런 일들만 찾아내고 집착한다. 수집된 증거들로 의심은 확신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곧 관계의 종결로 이어진다. 완전히 관계가 끝나지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불신은 거리감을 만들고 약간의 서먹함이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만든다. 이런 커플은 권태기가 오면 대부분 끝이 난다.
남녀는 서로 다르다. 다른 것이 당연하건만 서로에게 완전히 맞추려는 욕구가 갈등을 만들어낸다.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덧씌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은 변한 것이 없는데, 자신은 상대방이 변했다고 느낀다. 왜 자신의 바람을 채워주지 않는지 섭섭해 하지만 상대방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남녀 사이의 다툼과 오해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 남녀는 사고방식, 행동방식, 삶을 대하는 방식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다. 대화를 나눌 때 여자는 상대의 얼굴에 주목하지만 남자는 상대의 말에 주목한다. 여자는 대화의 내용보다는 상대가 어떤 표정으로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지만 남자는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면 될 뿐 표정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에게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상대도 몰랐던 장점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
관계가 삐걱거릴 때는 서로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를 모르면 사소한 것에서 거리감을 느끼고 상대방이 남처럼 느껴진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밉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그의 단점만 확대되기 시작한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의심이 증폭된다. 기억은 휘발성도 강하고 조작되고 은폐되기 쉽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정적인 감정을 양산해낸다.
마치 두 명의 내가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나는 사교적이고 외향적이지만, 다른 하나는 진지하고 내성적이며, 혼자를 즐기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쪽은 종교와 신앙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이성적이고, 실용적이며 현세를 개선하고 행복하게 하는 쪽에 관심이 있지만 다른 한쪽은 원칙을 중요시하고 성격을 문자 그대로 믿으며 확고한 신념과 감정으로 무장하고 죽음 이후를 더욱 중요시한다.
인간은 결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맞는 옷으로 갈아입듯이, 필요에 따라 다른 가면을 바꿔 쓴다. 그래서 여러 명의 내가 만들어지고 이들은 종종 내면에서 충돌을 벌인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고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자유를 원하는 인간은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길 원치 않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원한다. 누군가의 그늘 속에 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종종 이런 상황은 알코올 중독과 같은 자기 파괴적인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로 다른 두 인격체 사이에는 공간이 필요하다. 지나친 동일시나 상대에게 매몰되는 것은 스스로의 자율성을 억압하며, 좋은 요소만을 취사선택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무작정 따라 하고 추종하게 만든다.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전부라 믿는다. 그와 내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치관, 정의감, 내면의 목소리가 주는 울림과 직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때 과도한 고민으로 한걸음도 떼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전진할 수 있다.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내면의 갈등이다. 적은 내부에 있다. 내면의 갈등이 해결되면 마음이 하나로 뭉쳐진다. 그리고 차분해진다. 그래서 가끔 불안과 의심, 두려움, 망설임 등이 찾아와도 곧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