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목마른 소심한 당신에게

by 작가 전우형

늘 걷던 길, 늘 달리던 도로, 늘 보던 풍경, 늘 마시던 커피, 늘 보던 얼굴, 늘 보던 뒷모습, 늘 떠올리던 기억, 늘 듣던 노래, 늘 하던 일, 늘 하던 식사. 나를 둘러싼 모든 익숙한 것들이 있다. 벗어나고 싶은 걸까? 아니다. 새로움은 늘 공포를 불러온다. 늘 있던 그 자리에서 익숙한 모든 것에 둘러싸인 채 안온한 공기를 마시고만 싶다. 통제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예측할 수 있는 삶 속에서, 내가 모를 무언가가 갑작스럽게 나를 덮치지 않을 공간, 그 안에만 머물고 싶다. 그 안에서만. 늘.


늘 그렇게 도망치듯 산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은 더 이상 세상과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새로움과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늘 있던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곳을 따뜻하고 아름답고 살만한 곳으로 가꾸는 것이다. 완벽하게 나를 중심으로 재편된 세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뭐가 나쁘냐고? 나쁘지 않다. 도망치는 것도 좋은 삶의 방법이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라면 맞닥뜨리지 않는 편이 생에 이롭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늘 익숙하던 것들이 지겨워질 때가 있다. 늘 아름답던 꽃이 시들할 때가 있다. 늘 따뜻하던 집안이 답답해질 때가 있고 늘 살만하다 여겼던 그 공간이, 늘 하던 그 일들이 가시방석처럼 불편해질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에 빠진다. 머물고 싶은 동력과 벗어나고 싶은 동력이 서로 충돌한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생각은 해본 적조차 없는데. 너무나 두려워서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오랜 고민 끝에 길을 나선다. 짐을 꾸러미 꾸러미 싼다.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발걸음을 떼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짐을 싸는 시간보다 더 긴 느낌이다. 하지만 몇 걸음 안가 후회가 고개를 든다. 괜히 나섰나? 돌아갈까? 다른 곳에 가본들 뾰족한 수가 있을까?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날까? 지금의 고민이 해소될까? 오히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거 아닐까? 감당해낼 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쩌지? 짊어진 걱정거리가 늘어나며 발걸음은 무거워진다. 더 멀어지기 전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지기 전에 빨리 돌아가자.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은 날이 있다. 아무 변화도 없이 그렇게 늘 멈춰있는 것 같은. 하지만 돌아간 거리만큼 자신의 새로운 영토가 된다. 몇 걸음 떼어본 거리는 돌아왔다고 해서 그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가지 못한 걸음이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훨씬 더 먼 곳을 볼 수 있다. 고민과 걱정 속에서 살피며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은 언뜻 보면 시도나 도전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늘 계획만 하고 실행은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처럼 보여도 변곡은 남는다.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조심스럽게 삶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방식은 인간이 자라나고 또 늙어가는 것 모습과 같다. 자연스럽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기에 문득 되돌아보면 변화를 느낄 수 있지만 변화가 한창 진행 중인 그 시점에서는 언제나 제자리인 것만 같다. 매일같이 몸무게를 재어보고 키를 재어보아도 좀처럼 변화가 없는 어떤 수치들처럼,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과감하고 확실한 변화가 멋있어 보일 때가 있다. 일단 뛰어든 후에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며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이를 볼 때마다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할까 실망하고 자책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다. 그런 대단한 운은 사람을 가려 찾아오기에 일반화하여 적용되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다른 시각에서 같은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고민 끝에 한 걸음을 안전하게 내딛는 사람과 일단 두 걸음 내디뎌보고 안 되겠다 하며 한걸음을 물러서는 사람이 내디딘 걸음은 같은 한 걸음이다.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은 우리가 실망하고 좌절할 만큼 큰 차이는 없다. 그럼에도 분명 빨라 보일 것이다. 성큼성큼 내딛으며 삶의 지도를 급격히 키워나가는 모습에 어쩐지 조급해지고 나만 뒤쳐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들이 남은 땅을 다 차지하고 나면 나는 어쩌지? 하지만 급격한 성장 때문에 피부에 튼 자국이 남는 것처럼, 칭기즈칸의 기병과 유목에 특화된 그들의 생활방식이 이뤄낸 대 제국이 급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속도가 빠른 변화가 반드시 이로운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 분명 있다. 그리고 고민과 걱정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과감한 도전이라는 것도 변화의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진리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도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그러니까 매우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 사이에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라도 변화의 총량에 차이가 두드러지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늘 있다. 사실 너무나 흔해 하나씩 세어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 차이는 직관적이다. 이런 케이스들이 어쩌면 후자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변화의 속도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들이 빨리 변화했기에 멀리 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다만 누군가는 자신이 꾸준히 변화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데 반해 다른 한쪽은 자신이 그러한 부분에 있어 충분히 노력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고 늘 '스스로' 자책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발생하고 마는 차이일 뿐이다. 예컨대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변화와 발달, 발전, 향상과 같은 것을 꾀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은 그 결과가 충분히 쓸만하다고 생각하고 또 주변으로부터도 그러한 피드백을 받는데 비해, 다른 한쪽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주변으로부터도 그런 식으로 평가받는다면 결과 값에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신의 변화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변화에 대한 인식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생각은 흔적이 남지 않으며 휘발성도 강하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은 생각은 분명한 하나의 성과이며 결과물이 된다. 더불어 기록은 시간과 노력이 꽤나 필요하지만 안정적이며 변수가 적은 작업이며, 한번 뱉으면 되돌릴 수 없는 말이나 행동과 달리 쓰고 나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실패나 실수에 대한 벽이 높은 사람에게 오히려 더 적합하고 시너지도 좋은 작업이다. 생각에는 한계도 없고 멀리 벗어나도 위험할 일도 없어서 실제로는 망설이느라 가보지 못한 곳도 주저 없이 떠나볼 수 있으며, 생각이나 상상만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기존의 장소를 벗어날 훌륭한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분명한 목적과 동기는 망설임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돕는다. 더불어 겁이 많은 사람은 공부를 통해 그것을 상쇄시키는데 아는 만큼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마음의 난이도도 내려간다.


기록은 생각의 배출이며, 더부룩한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소화제와 같다. 플라세보는 삶에 늘 존재한다. '자기 효능감'과 같이 무언가 이루어지는 느낌,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은 변화에 있어 플라세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의사가 해열제라 말하고 비타민을 복용한 환자가 열이 떨어지는 것처럼 내게서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기록한 결과물은 실질적인 변화의 촉매로 작용한다.


만약 자신이 도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매 순간 망설이고 조심스럽고 많은 것을 재고 계산해야 하며 무언가를 시도하는데 고민이 많은 쪽이라면 유념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스스로 그런 고민과 걱정과 후회의 시간들을 두고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고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시간이 의미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스스로 그 시간과 노력들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평가할 때뿐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생각과 고민, 망설임과 후회의 시간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해보면 그 시간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 메시지를 많이 만들어내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더불어 그저 후회하고 지나갔을 순간들이 하나의 기록물로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기존에 부족했던 의미를 더하기도 하며, 내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으며,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에 대항할 소중한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