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소중하다는 말

by 작가 전우형

나는 떠올려보았다. 내게도 직업이 소중한 적이 있었던가? 절실하긴 했다.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붙들고 있는 상태도 '소중함'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랬으리라. 하지만 그에게서 직업이 소중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머뭇거려야만 했다.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니까. 밖은 실직이다 취업전쟁이다 골치 썩는 이들로 수두룩한데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가. 그게 무슨 일이건, 내게 맞는 일이건 아니건 무엇이 중한가. 요즘 누가 취향 따져가며 일한다고. 배부른 소리 말고 버티자. 나를 여기에 맞추자. 그러다 보니 즐거운 날도 있었다. 잘 맞는 건가 싶은 때도 있었다. 고단해도, 재미는 없어도 먹고 살 걱정에 하루하루 시름하는 것보단 낫겠지. 이런 생각들이 내 직업을 구성하는 심상들이었다.


나는 직업을 그만두는 것이 두려웠을 뿐 소중했던 적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대체 가능한 수단이 있다면. 애들 키우고 먹고사는데 특별한 지장이 없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게 '직업'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부록이 아니며 내 직업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잠깐 머뭇거려야만 했다. 오래된 서랍장의 먼지를 털어내듯 방치된 골동품 사이를 뒤적거려야 했다. 내게도 직업이 그런 것이었던가. 지키고 싶은 가치였던가. 소중한 나의 일부였던가. 그의 말처럼 내게 직업이란 '귤껍질'같은 것이었다. 까서 버려야만 먹을 수 있는 것. 안에 든 과육에 상처 주지 않고 뜯어낼 수 있는 것. 치장하기 위한 옷 같은 것. 하지만 그 껍질을 뜯어내고 나면 이내 시들해지고 마는 것. 그에게 직업은 '양파껍질'이나 '사과껍질'이었다. 껍질을 벗겨내다 보면 어디까지가 껍질이고 어디서부터가 나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 껍질을 도려 내다보면 살도 함께 깎여나가고 마는 것.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부럽지 않았다. 부러움은 직업에 대한 진지한 애정 때문이었고 부럽지 않은 건 자신의 직업을 붙들어야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는 절박한 느낌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부록이 아니고 싶다는 말이 가진 의미. 스스로 온전하고 싶은 바람. 바람은 그가 갖지 못한 것을 말해준다. '누구의'로 시작하는 수많은 수식어들 대신 그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 그리고 그 이름 앞에 자신의 일생 같은 직업이 고유명사처럼 붙는 것. 작은 자신의 영토 위에 오롯이 그것만이 세워지는 것. 응원하고 싶다. 소중한 직업이 고통스럽게 떨어지지 않기를. 온전한 자신의 일부로 늘 존재하기를. 그리고 부럽다. 내게도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면. 뚫린 구멍으로 유실되고 말았던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아직도 나를 붙잡을 무언가가 남아있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