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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정 Jul 03. 2020

(자식보다) 엄마가 먼저다.

아이돌 팬덤에서 배우는 브랜드 팬덤

“데뷔 초기에 엘한테 많은 섭외 요청이 있었어요.
제작자 형들이 그랬어요. 우선 한 명이 떠야 팀이 산다.
그런데 전 그게 이해가 안됐어요.
쉬운 방법으로 멤버 하나에 의존하긴 싫었어요.
사실 그렇게 되는 게 당사자한테도 힘들죠.
만약 안좋은 일이 생기면 또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오래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인피니트라는 팀은 7명이 모여서 완벽한 그림이라고 보니까요.”

이중엽 울림엔터테인먼트 대표



아이돌 팀들이 런칭 초기에 자주 쓰는 전략 중 하나가 멤버 한 명 몰아주기다. 비주얼 멤버나 예능 담당 멤버가 예능프로로 얼굴을 알리고 팬을 모은다. 그리고 그 멤버가 모은 팬들이 신곡을 위해 노동을 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신곡이 차트인을 한다. 많은 팀들이 이 전략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맹점이 있다. 그 팀은 주력 멤버 한 명의 이름으로 밖에 기억되지 못한다. 타멤버들은 한 명을 위한 병풍이 되어 버린다. 멤버 한 명이 멱살 잡고 끌고간다는 소리가 들리면 팬들도 팀에게 불만을 갖게 된다. 멤버들도 인간인지라 알게 모르게 케미가 훼손된다.


그리고 대부분 그 주력멤버가 가수 이외의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간다. 팀은 히트곡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생명력을 이어가야 하는데, 주력멤버 한명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결국 그 팀은 깨지고 만다.


팀 브랜드, 멤버 브랜드. 무엇이 중요할까? 당연히 팀의 브랜드가 더 중요하다. 팀 브랜드의 가치가 올라가면 그 안에 속해 있는 멤버들의 브랜드 가치도 덩달아 올라간다. 그렇지만 멤버 1인의 브랜드 가치는 팀 브랜드 가치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돌 팀의 팬덤들은 개인팬(특정 멤버 한 명만 좋아하는 팬)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팬이 아닌 올팬(멤버 전부를 좋아하는 팬)만이 진정한 개념팬으로 인정받는다. 개인팬은 악성개인팬, 즉 악개라 불릴 정도로 경계한다. 개인팬이 올팬보다 많다면 건실한 그룹이 아니다. 건실한 그룹이란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고, 멤버간 조화를 잘 이루며, 병크없이 오래간다는 뜻이다.


한 명의 멤버를 띄우는 전략보다 팀 전체를 띄우는 전략은 어렵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러나 오래가기 위해서는 멤버의 브랜딩이 아닌, 팀 브랜딩이 절실하다.


브랜드의 세계에서 아이돌 팀 브랜드는 기업 브랜드이고, 멤버 브랜드는 개별 브랜드다. 기업 브랜드를 엄마 브랜드, 개별 브랜드를 자식 브랜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돌 세계와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기업 브랜딩보다는 손에 잡히는 개별 브랜딩이 당장의 성공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기업 브랜딩을 소홀히 한다면 멤버 1인의 인기에 기댔다가 결국 팀이 깨지고 마는 아이돌의 사례를 반복할 뿐이다. 다음 세개의 경우를 보자.


눈가리고 아웅 – 토요타-렉서스 전략


한선교 전의원의 ‘통합당은 토요타, 한국당은 렉서스’라는 주장에 현실 웃음이 터졌다. 도대체 저 되도 않는 전략을 머릿속에 심어준 전략가는 누굴까?


 ‘토요타-렉서스’전략은 브랜드 전략계에 불후의 스타다. 프리미엄 이미지가 부족했던 토요타가 기업명을 숨기고 렉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둔 스토리다. 당시 미국 내 가장 많은 고급차 판매량을 기록했으니, 잊기 힘든 임팩트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프리미엄 이미지가 부족한 기업들에게 토요타-렉서스 전략은 아직도 한줄기 빛이고 희망이다. 브랜드 전략가들도 손쉽게 꺼내 드는 카드가 토요타-렉서스 사례다. 그런데, 아직도 이 사례를 들먹이는 브랜드 전략가가 있다면 자신의 자질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토요타가 렉서스를 런칭한 것이 언제인가? 무려 1989년이다. 당시는 ‘브랜드’가 그저 ‘제조자’의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던 시대다. ‘브랜딩’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지금과 당시는 시장, 고객, 커뮤니케이션이 완전히 다르다. 그냥, 다른 세계다. 완벽히 다른 세계.


왜, 토요타-렉서스 전략은 이제 용도폐기를 해야 하는가?


첫째, 지금은 완전한 정보 오픈의 시대다. 기업명을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법인을 달리하고 커뮤니케이션에서 모기업을 노출하지 않는다고 고객들이 깜박 속아넘어갈 거라고 기대하지 말자.


둘째, 이제 기업명은 단순히 제조자 표시 수준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브랜드는 경험에 대한 약속이다. 그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것이 브랜드의 성공을 가름한다. 그리고 고객들은 신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모기업을 본다.


또한 고객들은 브랜드 이면을 궁금해하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브랜드’를 선택한다. ‘좋은 브랜드’란 기능, 품질, 가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 가치, 선한 영향력, 퍼스널리티가 종합적으로 얽혀 ‘좋은 브랜드’를 이룬다.


그렇다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갖지 못한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매스 브랜드에 머물러야 하는가? 당연히 그럴 수는 없다. 매스 이미지의 모기업이 프리미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별도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런칭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자동차가 2015년 제네시스를 별도 법인화하며 모기업과 분리된 고급화 전략을 선언했을 때도 토요타-렉서스 전략을 예로 든 기사들이 많았다. 5년이 지난 지금 제네시스는 파워브랜드로 성장했다.


제네시스 전략의 성공을 단순히 토요타-렉서스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제네시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은 모기업을 숨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현대자동차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2019 브랜드가치평가에서 전세계 브랜드 중 36위를 차지한 세계 최고의 브랜드다.


프리미엄 전략을 펴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와 더불어 기업 브랜딩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기업이 프리미엄 이미지가 부족하더라도, 신뢰의 이미지가 구축된다면 숨기기에 급급한 것 보다는 성공의 가능성이 조금 더 커진다.



엄마가 곧 자식


좋아하는 음악을 신중하게 골라 MP3플레이어에 넣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있었다. 아이리버. 레인콤의 아이리버는 빌 게이츠가 파트너로 선정했을 만큼 성공적인 브랜드였다. 미국 한복판에 사과(애플)를 씹어 먹는 광고를 걸 정도로 야심 찼었다. 레인콤은 ‘아이리버’를 사명으로 승격시켰다. 아이리버는 곧 ‘MP3 그 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리버의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애플이라는 엄마를 둔 아이팟을 뛰어넘을 수 없었고, 비슷한 기술 수준의 저렴한 유사 제품들이 너무나 많이 런칭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MP3 플레이어의 시대는 예상보다 빨리 저물었다. 싸울 있는 시장 자체가 없어진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전자사전, 네비게이션, 스피커를 비롯 체중계, 선풍기, 칫솔 살균기에 이르기까지 신제품들을 출시했지만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구매하지 않는 브랜드, 데이비드 아커(David Aaker)의 이론에 따르면 ‘묘지브랜드’가 된 것이다.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어느 제품도 독주 체제를 이어가기는 어렵다. 유행이 지나가거나, 카테고리 자체가 진부해지거나, 새로운 대체제가 나오거나…. 요즘의 시장은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그 무엇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리버의 사례처럼 기업 브랜드가 곧 제품 브랜드인 경우, 그 제품의 인기가 꺼지면 반등의 기회를 갖기 불가능하다. 개별 브랜드의 진부화가 기업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진부화시키기 때문이다. 기업 브랜드는 없고 제품 브랜드만 있었던 아이리버의 뼈아픈 사례다. 현재 아이리버는 SK텔레콤에 인수되어 ‘드림어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컨텐츠 유통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소녀 가장


쌍용자동차가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듯 위태한 모습이다. 한때는 코란도, 무쏘, 체어맨 등의 레전드 브랜드들을 출시했던 기업이다. 벤츠와의 기술 제휴로 만들어진 무쏘를, 벤츠 딜러 네트워크에서 판매하던 찬란한 시간도 있었다. 이제는 모두 과거가 되었다.


어쩌면 쌍용자동차는 더 빨리 위기가 닥쳤을 수 있다. 그런데 2015년에 쌍용자동차의 생명 연장브랜드가 탄생했으니, 티볼리다. 마힌드라 그룹 인수 후 처음 출시된 브랜드였던 티볼리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소형 SUV시장을 단박에 만들었다. 신드롬급 인기를 보여준 티볼리의 누적 판매 대수는 1988년 출시된 코란도, 1993년 출시된 무쏘를 능가한다.


예상을 압도하는 티볼리의 성공으로 쌍용자동차가 보여준 모습은 그저 티볼리에 올인하는 것 뿐이었다. 모든 브랜딩이 티볼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쌍용자동차의 자부심이자 상징이었고, 나름의 팬들도 갖고 있던 코란도마저 티볼리의 영향권을 비껴갈 수 없었다. 페이스오프된 코란도는 자존심을 잃고 까마득한 동생 티볼리를 닮은 모습으로 출시됐다. 사람들은 티볼리를 닮은 코란도를 ‘코볼리’라 부르며 조롱했다. 그리고 결국 티볼리에어의 재출시를 위해 시장에서 철수됐다. 쌍용자동차에서는 이를 패밀리룩이라고 둘러댔지만, 사람들은 그 변명을 믿지 않았다. 티볼리는 쌍용자동차의 소녀가장이라는 세간의 농담을 그대로 증명해보인 것 뿐이다.


그러나, 티볼리 혼자 시장을 차지하는 것을 지켜만볼 수는 없지 않은가? 티볼리가 키운 소형 SUV시장에 현대자동차가 코나를, 기아자동차가 스토닉을 출시했다. 금수저 코나를 흙수저 티볼리가 이기기는 어려웠다. 지금은 코나가 티볼리보다 판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기업의 모든 활동을 티볼리에 집중했던 쌍용자동차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원래 쌍용자동차는 파워풀한 남성이라는 브랜드 페르소나가 있었다. 그런데, 티볼리는 이 모든 것을 리셋시켰다. 깜찍하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은 여성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티볼리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한 쌍용자동차의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쌍용자동차의 정체성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앞서 언급한 ‘뷰티풀 코란도’라는 이율배반적 이름이다.


자동차는 브랜드 선택에서 모기업의 역할력이 가장 큰 비즈니스 중 하나다. 한마디로, 금수저 브랜드가 통하는 시장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렵고, 설혹 용이 탄생한다고 해도 개천을 재개발하지 않는 한 그 용의 미래가 빤하다. 전기자동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하루가 다르게 패러다임이 변하는 곳에서, 쌍용자동차처럼 기술 개발 의지가 없는 엄마의 자식이란 그다지 매력적일 수 없다.


단 한곡의 힛트곡을 남기고 사라지는 원히트원더 (one-hit wonder)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식브랜드가 아닌 엄마브랜드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엄마브랜드를 깊이 있게 만들어야 한다. 엄마브랜드의 단단한 철학과 서사가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어야 그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자식브랜드는 열매다. 엄마브랜드는 뿌리다. 뿌리가 있기에 식물이 꼿꼿이 설 수 있고, 하늘을 향해 성큼성큼 자랄 수 있다. 뿌리는 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과 무기양분을 잎의 세포까지 구석구석 보내준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다면 실한 열매가 자랄 수 없다.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잎, 꽃, 열매 뿐이다. 보이지 않는 뿌리보다 열매에 집착하는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때깔 좋은 열매가 땅에 떨어지고 또다른 열매가 계속 자랄 수 있게 해주는 힘은 뿌리에 있다. 이것이 열매보다 뿌리, 자식브랜드보다 엄마 브랜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한가지만 더 얘기하자. 유재석의 부케릭터들이 왜 성공했는가? 부케 자체의 매력 때문인가?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재석이라는 본케 브랜드가 이미 단단히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본케 브랜드가 사랑받아야 부케도 사랑받을 수 있다. 본체가 비호감인데 부케가 호감일리가… 그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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