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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Dec 14. 2020

내가 만났던 '가왕' 조용필3

조 기자의 연예수첩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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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기우였다! 2시간여 동안 무대에서 울려 퍼진 곡수를 세어봤다. 짧은 인트로 곡과 메들리로 묶인 4곡을 빼고도 무려 22곡이었다.

조용필의 우스갯소리를 빌리면 "그 많은 곡들을 며칠 동안 나눠 불렀다가는 손님이 안 올까 걱정해 추리고 추린' 개수가 이 정도다.


객석과의 소통을 빙자한(?) '농담 따 먹기'나 개인기 타임도, 게스트 가수들의 그 흔한 품앗이도 없었다. 반 세기 전 실은 가수가 아닌 기타리스트로 출발했던 이력을 증명하듯, 때로는 기타를 직접 연주했다.

그리고 놓치는 박자와 '음 이탈' 한 번 없이 짱짱한 음색으로 공연 내내 홀로 노래했다.


그뿐인가, 대형 콘서트일수록 자칫 소홀하기 쉬운 관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동형 무대 장치로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객석을 직접 찾아가 노래 부르고 따뜻한 인사말을 건넸다. 비싼 좌석이든 싼 좌석이든 자신의 무대를 보러 온 관객 모두에게 공평한 그의 '공연 철학'에 가슴이 울컥해지는 광경이었다.


불로장생의 명약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 와 '가왕(歌王)' 아니 '가황(歌皇)'에게 선물하고 싶다. 영원불멸의 아티스트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주길 간절하게 희망해서다.


가수가 콘서트를 노래로 채워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원칙이다. 그럼에도 조용필을 유독 우러러보게 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조용필 말고도 콘서트 표값이 아깝지 않은 가수들은 간혹 있다. 아저씨 가요팬의 수준에선 콘서트에 올인하기로 소문난 이승환 등이 대표적인데, 멤버들의 학예회 내진 장기 자랑 수준에 그칠 때가 많은 아이돌 그룹의 무대는 솔직히 인정하기 어렵다. 아니 익숙하지 않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게다. 


그 같은 이유에서 콘서트로 가장 인상 깊었던 가수를 물어보면 두 말 않고 일본 록밴드 글레이와 이승환을 꼽는다. 물론 조용필은 제외하고다.


입사 2년째였던 1999년 일본 요코하마 마쿠하리 메세에서 취재차 직접 관람한 글레이의 공연은 감탄과 경악 그 자체였다. 무려 20여만 명을 앞에 두고 기억하기로는 서너 시간 동안 내리 수 십 곡을 불러 젖히는 과정에서 인사말과 곡명 소개 정도를 제외하곤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입 꾹 다물고 물건 만들기에만 집중하는 일본 장인의 풍모마저 느껴졌다.


2006년 '무적'과 데뷔 30주년을 기념했던 지난해 '무적 전설' 투어의 이승환도 못지않았다. 4시간 가까이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모습에 '당신보다 어린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살았나' 싶어 좌절하기도 했다.


부업이 본업을 가리는, 부 캐릭터가 본 캐릭터를 압도하는 요즘이다. 잔꾀 부리지 않고 한 우물만 팠다가는 말년에 바보 되기 쉬운 세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용필처럼 반 세기 넘도록 자기 일에만 묵묵히 일로매진하는 예술가들을 보면 여전히 존경스럽다. 여기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대로 타인에게 겸손하고 너그러운 배려심까지 갖추고 있다면 범접할 수 없는 경외심마저 든다.


갈수록 선배는 줄어들고 후배는 많아지고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와 비례해 말수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솔직하게 구체적으론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많아지고 있어 걱정이다. 나름 기자 물 좀 먹었다고 정확한 팩트에 바탕을 두고 객관적으로 얘기한다 자신하지만, 후배들을 비롯해 나이 어린 주위 사람들에겐 그래 봤자 잔소리다. 


누구나 말하는 100세 시대라면, 이제 반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남은 절반의 레이스는 누구를 간섭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코스에서, 내가 원하는 속도로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함께 뛰는 남들보다 앞서면 좋겠지만, 행여 뒤처지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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