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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an 05. 2021

이젠 언급이 필요 없어진 김기덕 4

조 기자의 연예수첩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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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마주한 국내 영화인들의 얼굴 역시 문병곤 김수진 한은영 등 새내기 감독 세 명의 단편 경쟁과 시네파운데이션 그리고 비평가주간 부문 진출로 당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밝았다.


이 가운데 문 감독의 단편 경쟁 부문 황금종려상 수상은 김기덕 감독의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만큼이나 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다.

혹자는 "단편인데 뭘..."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몰라서 하는 얘기다. 칸에서 장편과 단편은 거의 동급으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단편이야말로 미래의 세계적인 감독들을 배출하는 요람이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으로 한국 영화계는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김지운 봉준호 등의 뒤를 이을 '국가대표 상비군'을 얻게 된 셈이다. 절대로 낮게 평가받아선 안 되는 경사 중의 경사다.


작품의 제대로 된 진가를 분석하고 미완의 대기를 먼저 알아본 뒤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대중문화를 다루는 언론의 중요한 할 일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올해 칸 직간접적으로 취재한 국내 언론 대부분은 너무 게을렀다. '우물 안 개구리'의 처지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야로 접근하는 자세가 아쉽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살짝 민망한 대목이 있다. 임권택 감독부터 봉준호 감독까지를 '국가대표'로 규정한 내용이다. 지난 10월에 올린 "싸이를 그냥 '노는 아이'로 놔두자" 편에서 자유로워야 할 아티스트에게 함부로 태극마크를 달아주지 말자고 주장했던 걸 떠 올리면 한 입으로 두 말한 셈이 됐다. 여기에 국가대표도 모자라, 이제 막 명함을 내민 새내기 감독들한테도 국가대표 상비군이란 타이틀을 붙였으니 부끄럽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7년 전 칸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줬던 영광의 주인공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모두 이런저런 피치 못할 속사정이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질 못했다. 작품을 준비 중이란 얘기마저 없어, 이들의 등장을 가장 먼저 기쁜 마음으로 바라봤던 처지에선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발굴도 어렵지만 육성은 더 어렵다는 옛말이 피부로 와 닿는다.


영화의 발전과 확장은 '작가'가 선도하고 '장인'이 뒤를 따른다. 영화감독의 부류를 작가와 장인으로 굳이 구분하는 게 다소 낡은 방식의 접근처럼 보이지만, 이해하기 쉽도록 '작가 = 예술성' '장인 = 상업성'이란 이분법적 등식으로 보자면 작가와 장인은 새로운 흐름의 제시와 완성을 각각 책임진다고 볼 수 있다. 똘똘한 작가 혹은 장인 한 명이 영화사와 영화산업 전체를 바꿔놓은 경우도 허다해, 그 어느 분야 이상으로 사람이 차지하는 몫은 막대하기 그지없다.


이 같은 시선으로 볼 때 김기덕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한국영화의 세계 속 흐름을 주도하고 위상을 끌어올리는데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바지했던 작가의 다소 때 이른 중도하차란 점에서 한국 영화계의 손실인 건 분명하다.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맞서겠지만, 도덕성 시비 내진 위법적인 행위 여부와 상관없이 그가 거둔 성과 자체를 완전히 없던 걸로 무시하기는 객관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죽음이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면 무조건 미화부터 하고 보는 일부의 행태도 단호히 배격한다. 추모라는 미명 하에 생전의 모든 행적을 좋게만 기억하려 하는 우리네 관대한 습성을 인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만큼은 소극적으로나마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찌 됐든 김기덕 감독이 해외 영화계에 한국영화를 알리는 주역으로 높이 평가받았던 과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난받아 마땅한 행각과 각자에 따라선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작품 세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그를 자꾸 소환할 이유가 없어졌다.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린 지금, 더 이상의 언급은 무의미할 듯싶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우리 영화사의 평가는 불편하든 반갑든 간간이 이어지리라 본다. 앞으로도 김기덕이란 이름은 여전히 '문제적 영화인'의 대명사로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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