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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Feb 04. 2021

24시간 카메라 들이대는 '트루먼쇼'의 비극 2

조 기자의 연예수첩 67

이전 회에서 이어집니다


일반인 출연자들의 정신 건강 관리에 부실했던 제작 시스템도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6일 '짝' 관계자는 제작 현장에 심리 상담사가 있었는지를 묻는 스포츠 투데이 취재진의 질문에 "응급 치료가 목적인 팀 닥터는 항상 대동하지만, 심리 상담사는 없다"라고 답했다.


낯선 카메라에 자신을 노출시킬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이성으로부터 선택받고 외면당하는 촬영 과정에서 출연자들이 시달릴 스트레스 관리에는 정작 무대책으로 일관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는 자살 결심을 실행에 옮길 때까지 주변에 아마도 많은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보살피지 않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제작진 가운데 몇몇은 "죽음의 이유가 프로그램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고민이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알고 신경 썼겠나"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멀쩡했던 젊은이가 촬영 과정에서 심경 변화를 일으켰다면 그것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책임은 오롯이 제작진의 몫이다.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를 보면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가 관찰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중요 소품 정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을로 위장됐던 거대 야외 세트장을 탈출한다. 이 와중에도 제작진은 주인공이 받을 정신적 충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시청률을 올리는 데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지금 우리 방송계는 '트루먼쇼'를 닮아가고 있다. 프로그램의 목적이고 지향점이어야 할 '사람'이 시청률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가장 우선인 방송계 풍토가 아쉽기만 하다.


또 반성부터 하고 시작해야겠다. '극단적인 선택은 아름다운 퇴장이 될 수 없다' 편에서 저질렀던 잘못을 반복해서다. 그때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지만, '자살'과 같은 단어를 왜 이리 아무렇지 않게 썼는지 정말 부끄러울 따름이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기까지 했는데, 이 역시 새롭게 제정된 언론윤리강령에서 심각하게 어긋난다. 기사 작성 의도와는 별개로, 예전의 글들이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안겨주진 않았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오래전 이 같은 표현에 독자들이 느꼈을 수준만큼은 아니겠지만, 채널을 돌리다 요즘 관찰 예능 프로그램들을 가끔씩 또 우연히 시청하게 되면 비슷한 감정이 든다. '내가 왜 궁금하지도 않은 저들의 일상을 무심코 관찰하고 있을까'란 각성에 얼른 리모컨을 집어 든다.


수년 전 '1박 2일' 등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이 득세할 때만 해도,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처럼 특정 연예인의 일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주류로 떠오르리라 내다봤던 시청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은 '남 사는 모습을 보는 게 뭐 그리 흥미로울까'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상 매체의 출발이 타인과 사물을 엿보고 싶어 하는 심리로부터 비롯되긴 했으나, 왁자지껄하고 시끌벅적하지 않은 예능은 예능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으로 보인다.


시청 방식이 변한 것도 제작 트렌드 변화를 부추겼다고 생각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방송은 주로 여럿이 거실 등에서 TV로 함께 시청하던 매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TV의 자리를 이젠 스마트폰이 당당하게 대신하고 있다. 화면의 크기가 벽 전체를 차지할 정도가 아니라면, 인테리어 소품에 불과한 처지로 전락했다.


각자가 지난 이삼일 동안을 돌이켜보면 그 같은 변화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 나 말고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TV로 방송을 본 적이 있었나? 설령 두 명 이상이 함께 있었다 해도, 시선은 거실 한가운데 TV가 아닌 자신의 스마트폰에 꽂혀 있었을 것이다.


방송 시청이 이처럼 집단적 경험에서 개인적 경험으로 바뀌어가다 보니, 대중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의 유형도 당연히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형식이 변하면 자연스럽게 내용도 변하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관찰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는 당연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인기가 당연하다고 해서 과유불급에 가까운 지금의 상황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모든 프로그램의 '관찰 예능화(化)'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별 생각이 없다면 조금 문제다. 아닌 건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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