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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Mar 29. 2021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궈룽, 아니 장국영1

조 기자의 연예수첩 76

현지 발음대로 이름을 적었을 때 왠지 어색한 중국 아니 홍콩 배우들이 있다. 청룽보다는 성룡이, 홍진바오보다는 홍금보가 훨씬 친근하다. 주윤발과 유덕화도 마찬가지, 우리에게 여전히 그들은 바다 건너 은막의 스타가 아닌 옆집 형 내지는 오빠처럼 가깝고 친근한 존재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1980~90년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전역을 주름잡았던 홍콩 배우들은 지금도 비교적 건재한 편이다. 주윤발이 홍콩인들의 '우산 혁명'을 지지했다가 작품 활동에 다소 지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부분은 연기와 제작을 겸하며 30년 넘게 굳건히 현역을 지키고 있다.


장수하는 과정에서 예전과 달리 실망감을 안겨주는 이들도 더러 있다. 성룡이 대표적이다. 남녀노소 모두로부터 사랑받던 코믹 액션스타에서, 요즘은 홍콩 사람들이 대 놓고 싫어하는 '밉상'으로 전락한 듯싶다. 노골적으로 친(親) 중국 본토 성향을 과시하고 있어서인데, 영화 속 약자의 수호신이 실생활에선 강자의 앞잡이가 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그 와중에 아직도 가슴 한 구석이 저려오는 이름이 있다. 바로 장국영이다. 고인이 된 지 올해로 벌써 18년이나 됐지만,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열기가 계속되고 있어 마치 '현재 진행형'처럼 느껴진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느낌은 비슷하다.


마치 어젯밤 일 같다. 2003년 4월 1일이었다.


누구나 재미로 거짓말을 주고받는 만우절이지만, 장난 삼아 허위로 기사를 쓸 순 없는 법. 여느 때처럼 편집국은 기사 작성 및 출고로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옆자리의 동갑내기 입사 동기가 황망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장국영이 죽었대."


홍콩영화의 인기가 살짝 수그러들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홍콩 톱스타들의 근황이 해외 연예 뉴스로 자주 다뤄지던 시절이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 청룽(성룡)과 저우룬파(주윤발) 이상으로 사랑받던 장궈룽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입사 6년째이던 우린 홍콩 등 중화권 매체가 쏟아내는 관련 뉴스들을 미친 듯이 쓸어 담아 번역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어에 능통한 동료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공들여 번역한 모 현지 매체의 뉴스가 새빨간 가짜란 걸 뒤늦게 알고 허탈해했다. '장국영이 생전에 자국 매체의 보도를 그토록 불신하고 멀리하던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언론사에 입사하고 나서 연예인의 죽음에, 그것도 해외 연예인의 죽음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기는 장궈룽이 처음이었다. 사망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줬던 동기와 함께 기사 마감 후 맥주잔을 주고 받으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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