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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l 13. 2020

기록은 기억을 지배할까?

커피 한 잔 할까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아주 오래전 유명했던 어느 카메라 광고의 카피가 떠올랐다.

바로 지난해 가을, '커피 한 잔'을 위해 방문한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말이다.


2010년 12월3일, 처음 방문했던 '붉은광장'

그때만 해도 이렇게 내가 '커피 한 잔'을 위해 이 곳에 올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겠지.

그저 바실리아 성당을 보면 테트리스만 떠올랐던 때 였으니까 (...)



먼저 이 바실리아 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 보자.

나는 업무차 해외를 다니는 일이 참 많은데 남미나 유럽 아니, 전 세계 어딜 가도 늘 비슷한 형태의 성당만 본다.

그런데 유독 이 성당은 예나 지금이나 참 유니크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언제 봐도 참 매력적이다.

물론 이 성당은 나뿐만 아니라 건축 당시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독특했던 것 같다.

이 건축물을 만들게 한 러시아의 이반 4세는 이를 설계하고 만든 건축가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소문이 있다.

그만큼 절대로 이와 유사한 건축물 조차 짓지 못하게 해서 유일무이한 건축물을 보유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덕분에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그 선택은 옳았을지도 모른다.

천재 건축가의 재능을 더 이상 보지 못한 것은 참 아쉽지만 말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나는 여기에 오래전, 회사원 시절에 긴 휴가를 내고 왔었다.

그때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추운 러시아의 한 겨울밤이었는데, 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에 오랫동안 서서 한없이 성당을 바라보며 필름 카메라로 사진만 한참 찍었던 기억이 난다.



10여 년이 지나 그때와 달라진 건, 내가 머리색이 단정해졌다는 것 외에도 이젠 사진 구도속에 커피가 꼭 들어 있어야 뭔가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주 신기한 건 그때보다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그때의 기억이 어찌나 생생한 지 모스크바 공항에 내리자마자 지도도 안 보고 이곳을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당시 찍었던 많은 사진의 '기록'이 내 기억을 소환한 것이 아니라, 생생한 '기억'이 기록조차 지배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고 찾아온 것이라고 말이다.

이 날 깊어가는 밤의 모스크바는 참 아름다웠다.

하나뿐인 바실리아 성당도 아니고 크렘린 궁전 때문도 아니다.

10년 전, 그 오래전 기억을 넘고 넘어 그간의 모진 세월의 풍파조차 이젠 웃으며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그때의 '추억'이라는 녀석 때문일 거다.

(물론 커피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성당 앞에서 발견한 저 맛있는 에티오피아 커피 때문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10년 후에도 이 곳을 다시 찾아오고 싶다.

그때는 지금의 이 기록과 기억이 어떻게 추억으로 표현될지 궁금하지만 부디 지금처럼 좋은 커피 한 잔과 바실리아 성당은 그대로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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