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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Jul 29. 2020

겨울나비. 39 별똥별

퇴사 후엔 다 같은 처지

회사 중역은 군대 장군과 같다. 좋았던 시절에 부장에서 이사가 되면 미꾸라지가 용 되듯 대우가 싹 바뀐다.

방 하나 준다. 비서가 딸린다. 차 준다. 직통 전화 하나 더 달아 준다. 판공비를 준다. 회사 카드를 소신껏 쓸 수 있다. 그에 따르는 의무는 일 열심히 하고 회사를 살찌우면 그뿐.

좋았던 시절이 다 지나갔다. 이제는 단두대 처형 1순위가 중역이다. 대학 동문이나 고교 동문 중 빛나는 별 같이 중역 대열에 섰던 친구들은 이제는 눈 씻고 보아도 안 보인다. 연락도 안 된다. 관악산에나 가야 만날지.

친구들도 안 보면 멀어진다. 그래도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이따 보니 학교 동창보다 더 친해진다. 거의 온종일 함께 있고 밥같이 먹고 애경사를 함께 뛰어다니고 미운 정 고운 정이다 들었던 사람들이 중역되고 떠나간 뒤에 한동안은 다들 살 만하였다. 그러나 요즘 근황은?

C 건설회사가 시끄러웠다. 사장께 전화를 건다. 비서 아가씨가 말꼬리를 흐린다.

"출근을 안 하셨어요."

11시가 넘은 시간에 무슨 말? 검찰에 조사받으러 불려 갔나?

"황 부장, 걱정하지 마. 나는 관계없어."

얼마 전에 듣던 말이 귀에 새로운데 함께 근무하고 직원이 지금은 이사로 있는 S 건설 사업담당 이사에게 걸었다.

"김 이사, 무슨 말 못 들었어? 이 사장께서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대. 무슨 말 들은 것 없어?"

"며칠 전에 보따리 쌌대요. 그런 말을 들었지요."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니 사장은 C 건설 협력회사에 가보지 않겠느냐 하더니 이제는 자신이 떠났구나 취직시켜 주신다더니 난 어쩌지요? 하는 내 독백은 들어줄 상대가 없다. 사장 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 소리만 무심히 갈 뿐, 받는 이가 없다.

상무로 있다가 함께 근무하던 사업 본부장이 부영으로 갔다가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유원에서 전무로 있다가 다시 그만두고 집에 있다. 함께 근무할 때 재개발 재건축 사업 부담으로 병이 생겼었다. 협심증에다 머리 혈관이 막혔다. 말이 나오지 않는 심한 병 때문에 한동안 고통이 심했다. 유원을 그만두고 아들이 하는 용산 전자 시장 입구 가게에서 빗자루질하면서 웃는다.

"아주 마음 편해 좋아."

요즘은 어떠신가?

집에는 전화를 안 받았다. 전무의 아우가 B 산업의 총무부장으로 있다.

"황 형, 말 말아요. 형님은 쑥밭 되었어요. 아들이 하는 가게가 부도나 바람에 보증선 빚 때문에 끌 탕이에요. 아주 두 발 두 손 다 들었어요. 나도 연대 보증 섰다가 나도 고통 중이에요."

강원도 산골에 차도 안 들어오는 곳에다 오두막 짓고 병든 아내와 함께 있단다.

강원도에 한차례 산불이 지나간 다음에 걱정이 되어 그와 통화가 연결되었다.

“형님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네요. 다 타버렸어요. “

그들 고독과 절망감이 이제 시작인가 끝인가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합쳐서 나의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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