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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Feb 10. 2021

피차 뻘쭘한 학부모 상담 말고

학부모 상담 시즌이 되면 교사는 어쩐지 마음이 분주해진다. 예측 불가능한 질문,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 담임교사로서 신뢰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등 다양한 이유로 몸과 마음에 긴장감을 가져온다.


거기에 교사의 성향도 한몫하는 듯하다. 나처럼 내향적인 교사들은 낯선 사람과 단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사람들을 미소로 맞이하고, 그 속에서도 프로페셔널함을 잃지 않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소위 말해 말발이 어느 정도 필요한 건데 말이다. 피차 할 말을 못 찾고 뻘쭘하게 앉아 있는 그런 장면만은 연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열심히 상담 자료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내가 학부모가 되고 보니 학부모 상담이 긴장되는 것은 교사뿐이 아니다. 찾아오는 학부모들도 괜스레 떨리는 마음을 안고 온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내 아이가 밉보이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내 아이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궁금하기도, 걱정스럽기도 하다. 학부모 역시 무엇을 물어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어떤 때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고민스럽기도 하다.


교사로서는 가정과 학교의 소통이 교육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고 있기에, 또 학부모로서는 맞벌이 부부가 어려운 시간 내어 큰 마음먹고 온 발걸음이기에, 어쨌든 우리에게 주어진 상담을 잘 마치고 싶은 마음이다. '괜히 왔다. 2학기 때는 안 와야지' 싶은 상담 말고, 끝나고 나면 궁금증이 뻥 뚫리듯 풀리고, 교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자라나는 그런 상담 말이다.


학부모 상담이 그런 상담이 될 수 있으려면 교사와 학부모가 같은 목적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상담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동일할 때 학부모 상담이 진짜 필요한 상담이 된다. 피차 할 말을 찾지 못해 뻘쭘해질 필요가 없어진다. 목적이 있으면 방법도, 대화도 구체화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학부모 상담을 통해 교사와 학부모 모두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학생의 성장이다. 교사도 가정과 연계한 일관성 있는 교육을 통해 학생이 점차 성장하기를 바란다. 학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바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캐나다 밴쿠버 Surrey라는 도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그런 학부모 상담을 본 적이 있다. 6/7학년 복식학급 교실에서 만난 Min(가명)이라는 학생의 학부모 상담이었다. 그 학생은 한국에서 온 지 5개월쯤 된 유학생이었다. 학부모에게 동의를 구하고 Min의 학부모 상담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특히 학교에 대해 높은 기대와 요구를 갖고 있을 단기 유학생 가정이기에 교사가 어떻게 상담을 이끌어 나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학부모 상담 포맷(format)이 상당히 생소했다. Min의 학교에서 진행하는 학부모 상담은 'Three way conference'로 학부모,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도 참여하는 상담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딱히 할 말이 있을까 싶어 의아했다.


 상담 과정은 이러했다.

상담이 시작되자, Min이 이번 학기에 자신이 잘했던 점과 부족했던 점을 적은 것을 꺼내어 읽었다.  

교사가 Min의 발표에 대한 부모의 생각을 물었다.

교사도 Min에 대한 항목별 평가를 프로젝터 화면에 띄워 발표했다.

세 사람이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교사가 다음 학기를 위한 목표를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각각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제시한 실천방안을 문서로 정리해서 가정으로 보내겠다는 교사의 말과 함께 상담을 마쳤다. 

 

상담이 아니라 회의였다. Min의 상담은 말 그대로 conference, 회의를 보는 것 같았다. 교사, 학부모, 학생이 모두 Min의 성장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이를 위해 세 사람이 모여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논의한다는 점, 논의 끝에 일치된 결론을 가지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세운다는 점에서 상담보다는 ‘회의’에 가까웠다.


 Min의 다음 학기 목표는 영어로 퍼블릭 스피킹 능력 키우기였다. 그 목표를 위한 세 사람의 실천방안은 아래와 같다.

 학생: 매주 월요일마다 모닝 스피치 준비하기, 수업시간에 한국 친구들과 한국말로 잡담하지 않기 

 부모: 은행이나 병원에 갔을 때 민에게 통역 요청하기, 식당에 갔을 때 민이 직접 주문하게 하기

 교사: 프레젠테이션 발표자로 민을 더 많이 지목하기, 캐네디언 친구와 짝꿍이 되도록 자리배치 하기

 

이런 상담이라면 학부모도, 교사도 상담을 마쳤을 때 찝찝함이 없을 것 같다. Min의 성장을 위해 각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했다. 학생 또한 회의 한 주체로 참여했기 때문에 실천방안에 대한 책임감도 생길 것이다. 상담하기 전에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 소리 없이 명료하고 직설적인 것도 정말 좋았다.


학부모 상담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마련한 교사와 가정 간 소통의 장이다. 그것이 단순히 궁금증 해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소통을 통해 학생의 지적, 사회적, 정서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상담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캐나다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Three way conference 형식이 학부모 상담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상담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도 Three way conference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상담을 하고 있는 교사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덧 붙이자면 한국 학교의 학부모 상담 시기가 조금 늦춰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학교의 학부모 상담은 주로 학기 초에 교육과정 설명회와 함께 이루어진다. 학부모들 두 번 발걸음 하지 말라는 학교의 배려이기는 하다. 학기 초에 서로 소개하고 인사하는 것도 좋지만 학생의 성장을 꾀하는 학부모 상담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학기초는 너무 이르다. 학습결과물이 좀 더 누적되고, 교사도 아이를 좀 더 파악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파견 갔던 캐나다 밴쿠버 Surrey 교육청 학교들은 모두 학기 말, 학년 말에 학부모 상담이 이루어졌다. 이번 학기/이번 학년에 어떤 성장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다음 학기/다음 학년에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상담이다. 우리나라 학교처럼 학기초에는 '커리큘럼 나잇'이라고 한국의 교육과정 설명회 같은 행사가 있지만 상담과는 무관하다. 그때는 새로운 담임교사와 인사를 나누고, 아이가 공부하는 교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학부모 상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학부모 상담은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의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소통하는 자리다. 학생의 성장을 위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거기에 각자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는 자리가 된다면, 나처럼 말발 없는 교사도, 힘든 발걸음을 했던 학부모도, 모두가 만족할만한 상담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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