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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Feb 11. 2021

학교의 주인. 사실은 바지사장

"여러분, 학교의 주인이 누구죠?"

"우리요!"

"그럼 학교의 주인인 여러분이 학교를 함부로 사용하면 될까요?"

"아니요!"


학교 운동장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었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다!'

훈화 말씀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 반 6학년 학생들은 영 동의가 안 되는 모양이다. 교실에 들어와서는 '나도 알 것 다 안다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볼멘소리다.

"쌤, 솔직히 말해서 어차피 교장선생님이 학교 주인 아니에요?"


주인은 주인 대접을 받을 때 비로소 주인이 된다. 이름만 주인이고 실세가 따로 있다면,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바지사장이라고 부른다. 학생들은 스스로를, 이름만 있고 능력은 없는 학교의 바지사장. 가짜 주인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캐나다 학교에 파견을 나갔을 때, 주인대접을 톡톡히 받던 학생들을 본 적이 있다. 그 날은 귀빈을 초대한 학교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행사 후에는 참석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다과 자리가 마련되었다. 자, 과연 이 자리에는 누가 참석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당연히 교장 선생님, 아니면 교감 선생님.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업무담당교사가 참여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은 어떨까? 원래 귀한 손님이 오면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주인의 역할인데 학교의 얼굴이자, 학교의 진짜 주인이라는 학생들도 참석해도 되는 걸까? 평범한 한국 학교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안 될 말이다. 그 자리는 한국으로 따지면 현충일 기념행사라, 참전 용사와 그 가족까지 모신 자리였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연세 지긋하신 어른들과 그 가족까지 모셔두고 학생들이 손님 대접을 하게 할 순 없다. 학생들도 마땅히 할 말이 없으니 딱히 원할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혹여나 버릇없는 언행으로 실수라도 하면 참석해주신 귀빈들에게 무슨 실례인가! 


아니, 사실 이것도 굳이 자문했기 때문에 나온 자답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에는 '귀빈을 위한 다과 자리에 학생이 참여해야 하냐'는 질문 자체를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당연히, 학생은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교 행사에 초대 된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


'주인 대접을 톡톡히 받던 학생들'이라는 부분에서 모두가 예상하셨겠지만, 6학년 학생 몇몇이 다과 자리에 참석했다. 행사에서 사회를 맡았던 학생,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학생, 그리고 방송반에서 음향을 담당했던 학생들이었다. 


당시 그 모습이 나에게는 센세이셔널 그 자체였다. 학생이 귀빈을 대접한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생각이다. 물론 어른들이 하는 것처럼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어색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시니 차차 나아졌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접시에 쿠키를 담아 손님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어른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캐나다 아이들이 어른스러운 건지, 아니면 자꾸만 어른 대접을 받다 보니 정말로 어른스러워지는 건지.


나는 행사 이후의 시간이 그 행사가 학생이 주체가 되는 행사였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학교 행사에서 학생이 사회를 보고, 음향을 담당하는 것도 학생 자치 활동이 맞다.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필요한 교육적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나다 학교 행사를 보고 나니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이 이 행사의 주인이기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아직 어린 학생일 뿐이지만, 행사의 한 주체로 존중받고 있었다. 그것이 캐나다에서 고작 몇 개월을 함께 하는 나에게까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행사의 사회를 맡은 6학년 학생들


요즘 한국 학교에서도 학교의 많은 자리를 학생에게 내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학생자치회 활동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규칙을 만들고, 학생들이 직접 동아리를 개설하고 운영하는 학생 자율동아리가 생겼다. 학생자치회의 결정을 통해 학생 주도 교내 캠페인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학교의 대소사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준다. 그로 인해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눈에 잘 보이는 왁자지껄한 일이 아니더라도, 학교가 학생을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가 무엇인지 솔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시행하는 떠들썩한 학생자치 활동들이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들이 학교의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인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2년 전쯤 교육기사를 통해 접했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 자치회 활동이 떠오른다. 학생자치회의를 통해 학생의 의견을 종합하는 것은 평범하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회의에서 나온 안건을 종합하여, 회의 후 곧장 교장실로 간다고 한다. 교장선생님과 원탁에 함께 둘러앉아 안건을 전달하고 교장선생님은 개선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즉각적인 조치가 어려운 안건에 대해서는 선생님들의 협의를 거쳐 반드시 학생들에게 그 결과를 전달한다고 한다. 여건상 실현이 어려운 안건일 경우에는 학생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한 학생이라면, '그래 봤자 학교의 주인은 교장 선생님'이라는 생각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주인의식은 그들의 손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무작정 많이 쥐어준다고 심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직 어리지만 학교의 작은 어른으로 그들을 존중할 때, 주인의식은 저절로 생긴다.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주인은 주인 대접을 받아야 비로소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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