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사다. 교육공무원이 되기까지 책상머리에 붙어있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수능과 교대를 거쳐 임용고시 패스까지 열심히 외우고 문제를 풀었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이 집단에서 늘 중요시되는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유지’에 힘썼다. 성실, 청렴하고 친절 공정하며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는 공무원의 의무를 다하려 노력했다. 내 의견을 갖기보다 조직이 정해놓은 매뉴얼에 따랐다. 때로는 하라는대로 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보다 옳을 때도 있었다. 그게 공무원 집단이 요구받는 미덕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공무원이 된 교사가 학생마저 공무원처럼 키워내고 있다고 하면 너무 큰 비약일까?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공무원이 된 나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학교에서는 개인보다 집단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많다. 지나치게 자율성이 높은 사람보다는 주어진 스케줄에 잘 따르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하라고 하는 일을 잘 마치는 것이 하루의 목표가 되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기를 요구받는다. 문제는, 그 공부마저 남들이 정해 준 공부며, 문제를 잘 푸는 것이 목적인 공부라는 것이다.
캐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 딸이 요즘 자연과학 공부에 푹 빠져있다. 각종 동식물 공부에 지적 흥분을 느끼나 보다. 하루 종일 생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쏟아낸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똑똑해지는 게 참 좋단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던 아이의 꿈은 과학자와 자연 탐험가로 바뀌었다. 스토리북을 읽느라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연과학책을 꺼내 읽는다. 동물 실사를 한참을 들여다보고, 사진 밑에 있는 작은 글씨에 부록까지 읽으며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지적 호기심으로 인한 자발적인 공부다.
캐나다 초등학교는 교과서가 없다. 그래서 교사가 제시하는 다양한 동영상과 책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데, 아이에게 그게 참 흥미로운가 보다. 세상 쓸데없어 보이는 정보지만 아이들에게는 궁금하고 재미있는 정보.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니 외울 필요도 전혀 없다. 그저 “와~!!” 하고 감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를 들면 아빠 손바닥보다 더 큰 달팽이가 아프리카에 산다는 사실, 달팽이에게 이빨이 2만 개가 넘게 있다는 사실. 뭐 그런 거. 시험에는 절대 안 나올, 소소하지만 신기한 이야기들 말이다.
달팽이 먹이에 대해 배우다가 "달팽이가 어떻게 음식을 먹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달팽이 이빨 리서치. 지적 호기심에 반짝 거리는 딸의 눈을 보며, 나는 내 교실에서 얼마나 자주 저런 눈을 보았나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저렇게 가르치지 못했을까? 교육과정이 정해져 있고 평가가 있어서 그랬을까? 교사에게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하지만, 평가에는 자율성이 하나도 없다.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따라 자유롭게 가르치다간, 내 학생들만 평가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안 그래도 하기 싫은 공부마저 남이 정해준 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니 나 같아도 재미없겠다. 수업안을 작성할 때마다 가장 중요하다는 '학습동기유발' 부분이 조금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나는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착한(?) 성품을 가진 편이라 그냥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다가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이 되어서도 다를 것 없는 삶을 산다. 그런 공무원이 교실 속에서 또 다른 공무원을 키울까 봐, 그게 걱정이다. 책상머리에 엉덩이 붙이고 끈기 있게 앉아있다가 하라는 일이나 잘 마치면 만족하는 사람들을 키워낼까 봐. 냅다 외우고 냅다 풀어대다가 목표만 이루고 나면 다 던져버리고 싶은 그런 공부만 공부인 줄 알게 할까 봐. 그게 참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