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사랑 Mar 02. 2021

공무원 학교 선생이 또 다른 공무원을 키울까 봐-2

학교에서 공무원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학교 선생이 또 다른 공무원만 키워내는 것 같다면 그건 아마 수능 때문일 거다. 대한민국 초중고 교육의 목적지가 아닌가. 열심히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한 자라도 더 외우게 하는 것이 해답이 될 때도 있다. 어떤 교사도 대학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을 배우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공부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과정 자체가 매우 유의미하다. 자연 및 사회현상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력을 길러주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통해 확장된 경험의 폭과 깊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목표한 일을 성실하고 끈기 있게 마쳤을 때 나도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성취감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공부의 이유다.


다만 넓디넓은 '공부'의 범위가 지식 습득, 문제풀이로 제한되는 것이 참 아쉽다. 학교에서 배워야 할 공부는 점수를 위한 공부만이 아니다. 삶을 위한 공부도 포함되어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모두가 해야 하지만 모두가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살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는 그것이 공무원 학교 선생이 또 다른 공무원만 키우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자, 삶과 밀접한 다양한 공부가 학교에 필요한 이유라고 믿는다.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우리 삶과 밀접하면서도 참신한 주제의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다. 학생들이 직접 장사를 해 보는 어린이 사업가 프로젝트(Young Enterpreneur)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가끔 해 본 벼룩시장, 물물교환, 달란트 시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탐험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사업 아이템을 정하는 것부터 진짜 장사를 해 보는 것까지 약 한 달여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타이다이 티셔츠와 스노우볼을 팔고 있는 어린이 사업가들


먼저 얼마를 벌겠다는 사업목표를 정했다. 잠정적 고객의 소비 특징, 사업자금, 필요한 노동력을 고려해서 사업 아이템을 정했다. 정해진 아이템의 시장 가격과 소비자의 취향도 조사했다. 예상 판매개수에 따라 팔 물건을 제작하거나 사업자금을 들여 마련했다. 자본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차용증을 쓰고 주변 어른들에게 빌리도록 했다. 순이익을 고려해서 가격을 책정했다.


마케팅도 사업의 일부였다. 광고 전단지를 만들고 프로모션을 계획했다. 디스플레이도 판매전략 중 하나이니 물건을 어떻게 진열해야 잘 팔릴지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사업 수완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손님 응대 실습도 해 보았다. 학교 강당에서 이웃 어른들, 교사 및 학생에게 직접 물건을 판 뒤에는 매출 및 순이익 계산으로 비즈니스를 평가해 보았다. 사업 성공과 실패 요인도 분석했다. 로컬 사업가로서 지역 커뮤니티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로 수익의 10프로를 기부하는 것까지 완벽한 비즈니스 세계의 탐험이자 경험이었다.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샘플부터, 수익의 전액을 기부한다는 문구까지 자신만의 광고전략으로 가득한 광고지


사회에서는 실패의 타격이 크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 마음껏 연습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곳이다. 예전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자본금 만원으로 장사를 하는 '쩐의 전쟁'이라는 특집이 있었다. 당시 노홍철은 초기 자본금 만원으로 16만 원을 벌었다. 사람들이 살만한 물건을 싸게 사고 비싸게 팔아 멤버들 중 가장 많은 이윤을 남겼다. 반면에 유재석은 약 8000원의 적자가 났다.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상황이었다면 어떨까? 사업 자본금 몇 천 혹은 몇 억을 날리고 자본금만큼의 빚까지 지는 셈이다. 노홍철은 연예인을 하기 전에 스몰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장사의 생리를 경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물론 타고나기를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그 재능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학교에서 사업을 경험해 본 아이들이 사업할 엄두도 내어보고, 노홍철처럼 큰 성공을 거둘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꼭 그와 관련된 직업을 갖지 않아도 다양한 경험은 그 자체가 견문을 넓히고 적성을 발견하는 훌륭한 공부다.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했던 어린이 사업가 프로젝트도 그 자체로 훌륭한 경제교육이자 생활 공부였다. 시장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수요와 공급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의 노동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책임감 있는 자세는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장래에 꼭 비즈니스를 하지 않더라도 유용한 리얼 라이프 기술인 것이다.


세금 내는 교실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초등학교 교실 안에 미소라는 학급 화폐를 만들어 작은 사회를 만들었다. 각자 직업을 갖고 월급을 받고 장사도 한다. 주식투자도 하고 세금도 낸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지금처럼 주린이(주식 어린이)는 아녔겠다며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지금 우리 교육은 얼마나 리얼 라이프를 담아내고 있을까? 문제를 잘 풀고, 시험을 잘 치르는 공무원만 키워낼 것이 아니라, 살면서 필요한 기술을 체득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리얼 라이프 교육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전 17화 공무원 학교 선생이 또 다른 공무원을 키울까 봐-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