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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r 04. 2021

디지털 세대에게 책을 쥐어주는 것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다시금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디지털 매체를 제한할 수만은 없으니 올바른 미디어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커서 책 안 읽는 사람은 봤어도 컴퓨터 못 하는 사람은 못 봤다.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시대를 빠르게 쫓아간다. 참 희한한 게 우리 어릴 적에도 똑같았다. 처음으로 인터넷이나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할 줄 알았다. 요즘 두세 살 먹은 아가들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두 손가락으로 태블릿 화면을 확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세대에게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라. 나는 오히려 문자를 읽고 쓰는 문자 리터러시 교육이 더욱 필요한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문자를 한 자라도 스스로 읽고 쓰는 습관을 기르는 것. 그거야말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평생 즐기지 못할 영역이다. 손안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으로 빠르고 자극적인 미디어 정보가 끊임없이 들어오는데 문자로 된 정보에 눈이 갈까. 엄마 젖에 이유식만 먹던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달콤한 과일을 주면 아이 눈이 번쩍 뜨인다. 그 맛이 어찌나 짜릿한지 과일이 손에서 미끄러지기만 해도 울고 불고 한다. 심심한 이유식만 먹다가 점점 달고 짜고 맵고 강렬한 맛의 세계가 열리면 아무도 다시 이유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글쎄, 음식은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하기도 한다지만 책은 정말 그렇지 않다. 한 번 책과 친하지 않은 아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다. 어릴 적에 책장을 넘겨 버릇해야 어른이 되어서도 한 번이라도 더 책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다.


캐나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의 카펫 타임. 함께 모여 앉아 교사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캐나다 초등학교에 출근하고 그들의 하루를 관찰하면서 느꼈던 것은 캐나다 교육이 읽기에 목숨 걸었다는 거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갖은 방법으로 읽고 또 읽게 한다. 수준별로 그룹을 나누어 읽고, 고학년과 저학년이 파트너가 되어 읽고, 얼마나 많은 단어를 읽을 수 있는지 시간을 재면서 읽고, 소리를 내서 읽고, 조용히 읽고,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가서 읽는다. 어느 날 아침엔 칠판에 딱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D.E.A.R!(Drop Everything And Read!). '다 내버려 두고 읽어!' 라니. 이 정도면 일단 무조건 읽고 보자는 수준이다.


수업시간에도 미디어 매체보다는 책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캐나다 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 겨울잠에 대해 배우면 곰이나 개구리가 나오는 자연과학책이나 생활 동화책을 보는 식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업에서 책 읽기 비중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수업시간에 교과서처럼 사용되는 어린이도서. 정해진 주제에 대해 배우는 동안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접할 수 밖에 없다.


미디어 활용 수업 수준은 확실히 한국 교육이 훨씬 뛰어나다. 클릭만 하면 사용할 수 있도록 교과서와 연계된 교육 플랫폼이 있기도 하고, 교사들이 멋진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 한국과 비교하자면 사실 캐네디언들은 어떤 의미에서 조금 촌스럽다. 아날로그를 참 좋아한다. 디지털 도어록에 홍채인식까지 되는 세상인데 아직도 전 국민이 주렁주렁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닌다. 그런 그들의 아날로그 사랑이 교실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촌스러운 캐나다 교실이 세련된 한국 교실에 익숙한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다. 대체 자료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 쉽게 컴퓨터를 켜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컴퓨터와 친한 교육을 하고 있나, 아니면 책과 친한 교육을 하고 있나.


이쯤에서 오해를 막기 위해 밝혀두는 것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 없다는 뜻이 절대 아니라는 것. 디지털 시민 교육, 디지털 정보를 올바르게 판단하고 생산할 줄 능력 등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교육이 문자와 멀어져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문자를 읽고 머릿속에서 정보를 취합, 분석하고 사유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글로 써내는 과정은 디지털 세대도 잃지 말아야 할 인간의 중요한 이성 작용이다. 문자를 읽고 있어도 맥락을 놓쳐 길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다. 의식적으로 집중하여 읽고, 그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기까지는 반복연습이 꼭 필요하다.


익숙함은 자발성을 만들고, 자발성은 꾸준함을 만든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문자로 된 것을 읽어야 스스로 책에 손이 가고, 그것이 반복되어야 프로 독서러도 될 수 있고, 프로 사유러도 될 수 있는 거다. 감각적이고 세련되며, 자극적인 시대를 사는 디지털 세대지만 그 속에서도 문자를 통한 사유를 놓치지 않는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그 손에 책을 쥐어주자. 그것이 지금 필요한 교육이다.


학교(좌)나 지역사회 도서관(우)이나 수준별읽기책이 꼭 있다. 외국어도 아닌 모국어 읽기를 수준별로 가르치는 걸 보면 사회 전체가 문자 리터러시 교육의 힘을 믿고 있는 듯 하다.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읽기 교육, 특히 수준별읽기교육(Guided Reading)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한 분은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


https://brunch.co.kr/@ilae92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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