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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Feb 22. 2021

급식이들이 배워야 할 소통의 기술

함께 캐나다로 파견을 갔던 한국 고등학교 교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캐나다 애들은 다 하나같이 천사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아요?" 교사에게 말하는 태도가 예의 바르고 순수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나는 그것이 캐나다 학생들이 더 착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캐나다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에 비해, 어른과 의사소통할 기회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가족중심적인 사회인 데다가 스몰토크(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문화라 그렇다. 그들은 삶 속에서 꽤나 다양한 범위와 규모의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주로 마주치고 대화하는 사람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전부이고, 가족의 형태마저 단조로워지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관계와 시간이 한정적이니 의사소통방식이 또래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급식이가 아니면 알아듣기 어렵다는 '급식체'도 이러한 상황을 대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급식체를 쓰고 안 쓰고’가 아니다. 삶 속에 의사소통 경험이 다양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의사소통능력은 머리로 배우는 지식이 아니다. 삶의 경험을 통해 습득된다. 대가족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더 쉽게 이야기하고, 어린 동생이 있는 사람이 아이들을 더 잘 다루는 것과 같다. 다양한 소통의 경험이 없으면 각 상황에 맞는 소통의 기술, 소통의 애티튜드도 습득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학교에서 다양한 의사소통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삶에서 습득하기 어렵다면, 학교 안에서라도 다양한 의사소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해야 한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 활동이 읽기, 쓰기에 집중되기 쉽다. 말하기, 듣기와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관계 속에서 생각을 주고받는 연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캐나다 밴쿠버, 한 초등학교의 수업활동이 좋은 예이다. 캐나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로 5학년 학생들이 몰려왔다. ‘프레젠테이션 버디(Presentation Buddies)가 되어주기 위해서다. 1학년 학생들이 부엉이에 대해 한 달 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고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주어졌다.


한 팀이 되어 포스터를 만드는 1학년, 5학년 학생들
5학년이 글로 쓰고, 1학년이 그림으로 그려 함께 완성한 발표 포스터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5학년 Mia와 1학년 Li가 한 팀이 되었다. 교사가 준 포스터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5학년 학생이 1학년 학생의 답을 이끌어내야 한다. "제일 좋아하는 부엉이는 뭐야? 그 부엉이가 왜 가장 좋았어? 부엉이에 대해 배울 때 제일 재미있었던 점은 뭐야?" 5학년의 질문에 1학년이 대답하면, 5학년 학생은 그 대답을 글로 썼고, 1학년 학생은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함께 발표했다.


만들어진 포스터와 발표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핵심은 역시나 프레젠테이션 버디의 의사소통능력이다. 적절한 질문을 만들어내지 못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학생도 있고, 1학년 동생들의 대답이 시원찮으면 더 이상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써버리는 학생도 있었다. 한참 어린 동생과의 대화를 도대체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지 어려워하는 학생도 있었다. 의사소통이 잘 되었던 그룹은 당연히 알찬 포스터와 발표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의사소통을 통해 공동문제 해결을 경험하게 하는 활동 자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또래에서 선후배로 의사소통 대상의 범위를 확장시킨 것이 인상적이었다. 학교 안에서 학년이라는 바운더리에 묶이지 않는다면 보다 다양한 범위의 대상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의사소통 대상의 범위뿐만 아니라 규모 역시 확장이 필요하다.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는 것과 대중을 상대로 하는 퍼블릭 스피치는 각각 필요한 소통의 기술과 애티튜드가 다르다. 퍼블릭 스피치를 하면서 급식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청중과 비판적 피드백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캐나다 초등학교에도 퍼블릭 스피치를 연습하는 활동이 있었다. 월요일마다 모든 학급에서 이루어지던 'Show and Tell'이다. 매주 돌아가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들고 교실 앞에 선다. 3-5분 정도 이 물건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에 대해 발표하고 질문을 받는다. 지금까지 모았던 하키대회 메달, 밤마다 안고 자는 인형, 반려동물 햄스터까지. 아이들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물건들이 소개되었다.


Show and Tell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내 주변 세계에서 소재를 찾는다는 것. 화자에게는 말할 거리를 만들어 주고 청자에게는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햄스터를 가져온 날은 발표보다 질문이 더 많을 정도였다.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반응과 질문이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화자와 청자 간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했다.


이 활동은 유치원부터 7학년까지 수준만 달리할 뿐 모든 학급에서 똑같이 이루어졌다. 유치원 및 1학년 학급에서는 비슷한 활동을 좀 더 간단하지만 몰입 있게 진행했다. V.I.P.로 선정된 학생이 일주일 내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을 가져와 발표하는 것이다. 월요일은 가족사진, 화요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락 메뉴, 수요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등. 짧고 간단한 발표지만, 이것 역시 대중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듣는 퍼블릭 스피치 훈련이다. 그러니 이 학교 학생들은 유치원부터 7학년까지, 초등학교 9년 내내 퍼블릭 스피치를 연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Show and Tell. 학급 친구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사회로 나왔을 때, 꼭 필요한 능력 중 하나가 의사소통능력이다. 학교에서와는 사뭇 다른 차원의 장이 펼쳐진다. 다양한 연령과 직급으로 의사소통의 범위가 확장된다. 대입 면접을 시작으로 대학 조별과제 및 발표, 취업 면접, 직장 프레젠테이션과 회의 등, 보다 목적지향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정치, 경제, 과학, 의료, 문화, 예술까지, 이제는 팀을 이루지 않고 일하는 분야가 거의 없다.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개인이 더 나은 평가를 받고, 그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학생들의 삶 속에 다양한 의사소통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다양한 범위의 사람들과, 다양한 규모로, 보다 목적지향적인 의사소통을 해 보는 것. 지금 급식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소통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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