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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r 31. 2021

글로 배운 초등 국영수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많은 부모들이 공부에 대한 압박과 불안을 느낀다. 뭐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그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어떻게’가 빠져있다. 일단 다들 한다는 학습지를 시작해 본다. 남들 좋다는 문제집도 사 본다. 연산, 수학, 독해, 글쓰기에 영어까지. 학습지든 학원이든 돈을 들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널리고 널렸다. 하교 후 부모에게 검사받아야 할 과제가 하나 둘 늘어난다. 그렇게 글로 하는 공부가 시작된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유학생 학부모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어요." 교과서가 없어서 그렇다. 공책정리도, 단원평가도 없다. 부모 마음을 안심시켜줄 만한 결과물이 없으니 불안해한다. 눈에 보이는 글로 남겨야만 진짜 공부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캐나다 초등학교 수학 시간. 자신의 풀이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학생


캐나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 시간, 고작 한 문제를 풀다 수업이 끝났다. 넓이가 36 제곱센티미터인 다각형을 최대한 많이 그려보라는 문제였다. 한 학생이 나와서 본인이 그린 방식에 대해 발표했다. 친구들의 질문과 반론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한국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는 학습 정리도 없다. 더 쉽고 좋은 방법에 대해 토론만 하다 수업이 끝났다.


학교 다닐 때 나 혼자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친구에게 가르쳐주면서 풀이가 선명해지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내 풀이 방법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에 필요한 원리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글로 하는 공부만 공부라면 이 수업은 꽝이다.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 없다. 부모 마음을 안심시켜 줄 빨간 동그라미도, 가지런한 공책 정리도 없다.


그러나 이 수업에는 수학적 토론이 있다. 정돈되지 않은 언어지만 아이들이 입에서 입으로 개념과 원리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이 수업의 핵심이다. 수학적 원리는 답이 아닌 과정에 있지 않나. 맞고 틀리고로 채점하는 문제풀이 만으로는 그 과정을 평가할 수 없다. 학원에서는 가능할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빠르게 내야 하는 곳이니 더 어려울 것이다. 비단 수학뿐만이 아니다. 국영수사과 모든 과목이 그렇다.


수 모형을 이용해 세 자릿수 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학생들. 공책 정리나 문제풀이보다 초등시기에 꼭 해야 할 공부다.


특히 초등시기에는 글로 배운 공부가 능사는 아니다. 공부의 개념을 단편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책을 폭넓게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성숙한 어른(부모라면 가장 좋을 것이다)과 다정하고 논리적인 대화를 자주 하는 것. 아이의 사소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 해결 방식이 거창한 리서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인터넷이든 책이든 호기심을 해소하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 자신의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구상하고, 구상한 것을 말로, 그림으로, 글로, 만들기로 구현하게 해 주는 것. 그 외에도 운동, 음악, 그림 등 초등 시기에 해야 할 공부가 많이 있다. 모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관찰력, 사고력, 창의력, 자기 주도력, 체력 등, 소위 말해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잠재력을 키워주는 공부다. 국영수 문제집을 푸느라 사회나 과학 문제집 풀 시간이 없다는 학부모들의 고민을 들으면 참 안타깝다. 글로 하는 공부보다 지금 필요한 공부들이 많이 있는데 말이다.


글로 배운 공부에는 부작용이 많다. 앞서 수학 공부를 예로 들어 말했듯이 공부라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글로 하는 공부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해진다. 그러다 보면 부모가 주도하고 아이는 수동적인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초등 공부에서부터 ‘하기 싫다, 질린다, 지겹다, 할 일이 너무 많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아직도 한참 남은 공부 여정에 막심한 손해다. 게다가 부모는 아이를 위해 열심을 낸다고 냈는데 아이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아이는 점점 자신감을 잃는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사실 나 역시 캐나다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교육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 생활 내내 읽고, 말하고, 듣고, 구상하고, 만들고, 몸을 움직이는 캐나다 초등학생을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그런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능력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그 생각이 선명해진다. 초등교육만큼은 한국에서도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그런 교육이 제대로 되었다면 중고등학교 공부도 크게 걱정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글로 하는 공부보다는 훨씬 경쟁력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나 역시 주어진 제도에 따라 시험문제를 내고 평가를 하는 초등교사지만, 각 학년에 배워야 할 기본에 충실하되 더 힘써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가지 , 초등 교사로서 확실히 말할  있는 것은 초등학교 성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성적이 , 고등학교 성적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도 물론이고 아이의 미래는  말하면 잔소리다. 물론  학년에 배워야  것을 놓쳐서 학습결손이 생긴다면 나중에 그것을 매우느라 고생하거나 공부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이 생길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부터 '앞서 나가야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초등  당장 백점 맞은 시험지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은 경기 초반에 전력 질주하는 마라토너나 마찬가지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마라토너는 정작 중요한 순간에 스퍼트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한 공부 말고 잠재력을 키우는 공부를 하게  주자. 그것이 초등시기에 글로 배운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진짜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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