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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Feb 09. 2021

못 먹고 못 마시는 아이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뭐라도 입에 넣지 않으면 울렁거리던 입덧 탓에 간단히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쉬는 시간, 집에서 싸온 간식을 꺼내면 여지없이 아이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왔다.

"선생님, 뭐 먹어요? 배고파요, 한 입만요!"

그때 새삼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아침밥을 먹지 않고 등교한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은 오전 내내 배가 고프다는 것을 말이다.


아침밥을 거르는 것은 전 날 저녁에서부터 시작되는 악순환의 결과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그렇다. 학원도 가야 하고, 공부량은 늘어나고, 게임이나 sns로 친구와 소통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취침 시간이 늦어지니 다음 날 아침, 밥보다 잠이 중요해지는 거다.


밤늦게 잠든 아이를 억지로 깨워 눈도 위장도 아직 깨어나지 못한 입에 억지로 한 숟갈 들이미는 것도 참 못할 짓이다. 아침밥을 먹어야 속도 든든하고 편의점에서 간식도 안 사 먹을 텐데. 아침에 먹는 밥이 밤새 허기진 뇌도 깨워주고 체온에, 호르몬에, 감정조절까지 해준다는데. 아침밥을 먹이지 못한 부모는 애가 타지만, 당장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 짜증이 나는 자녀에게 부모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아침밥을 거르는 학생들 이야기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0교시가 존재하던 90년대는 물론이고 2002년에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0교시로 인해 아침밥을 거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할 정도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학부모회에서 교문 앞 삼각김밥 나눠주기 등, 각급 학교단위로 추진하는 아침밥 먹기 운동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못 먹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타깝게도 못 먹는 우리 아이들은 '못 마시는' 아이들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반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런데 학교는 하루 권장량만큼의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충분한 수분 섭취를 위해서는 목이 마르다고 느낄 때만 물을 마실 것이 아니라, 자주 조금씩 물을 마셔야 한다고 한다. 수시로 물을 마시려면 눈에 보이는 곳마다 물이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학교는 어떤가. 개인 물병을 들고 다니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이야기다. 각 층이나 급식실에 한 두 개 있는 학교 정수기는 마치 참을 수 없을 때 찾아가 벌컥벌컥 들이켜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기도 하다. 체육시간이 끝나면 달려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한 컵, 급식 먹고 한 컵, 정수기 옆을 지나가다 가끔 한 컵. 그러다 학원 가면서 사 마시는 탄산음료. 건강하고 충분하게 잘 마시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학생이 과연 얼마나 될까?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고 개인 물병을 권장하는 학교가 많아지고 있으니 이제는 '못 마시는' 학생들이 조금 줄어들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한국 학생들이 못 먹고 못 마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캐나다 학생들의 가방 때문이었다. 캐나다 학생들의 가방 속에는 늘 간식 도시락이 들어있고, 가방 옆 주머니에는 늘 물병이 꽂혀있다. 책상 위에 늘 개인 물병을 올려두고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언제든 홀짝홀짝 물을 마신다. 캐나다 학교에 있는 정수기는 지나가다 물 한 컵 떠 마시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빈 물병을 다시 가득 채우기 위한 용도다. 


중간놀이시간은 아예 Nutrition break(영양섭취를 위한 휴식시간)라고 불린다. 주어진 30분 중 첫 15분은 치즈 크래커, 사과 한 개, 요구르트 한 통, 쿠키 두어 개처럼 집에서 싸 온 간단한 간식을 먹고, 이후 15분은 밖으로 나가 자유시간을 보낸다. 아마 시리얼이나 오트밀처럼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하는 이 곳의 음식문화가 이런 학교 스케줄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다. 


식문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아침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모두가 일찍 자고 일어나던 농경사회도 아니고, 사교육이 없던 시대도, 엄마는 집안일하고 아빠만 출근하던 시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스케줄에는 변화가 없다. 변화하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서포트해 줄 만한 학교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이다. 억울하지만 분명하게도, 캐나다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고 있다.



캐나다 초등학교 수업시간. 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개인 물병.


사실 한국에서 못 먹고 못 마시는 것이 학생들 뿐인가. 배고프고 목마르기는 교사를 포함한 우리 사회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부모들도 아침밥을 거르기 일쑤고 하루 권장 수분섭취량을 채워마시는 현대인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매일 물병과 간식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캐나다 교사들을 보니 '현실 자각 타임'이 온다. 우리는 왜 먹고 마시는 이 중요하고 기본적인 몸의 욕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사는가? 어른도 제대로 못 먹고 못 마시는데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오죽할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문제인 것처럼, 당연한 듯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년도 넘은 옛날,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유일하게 우리 반만 간식시간이 있었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원하는 사람은 집에서 간식을 가져와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학교 앞에서 불량식품 사 먹지 말고 아예 집에서 건강한 간식을 싸와서 먹으라고 말이다. 일 년 내내 중간놀이 시간이 되면 우유와 함께 찐 감자나 고구마, 과일, 빵 등을 나눠먹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이 학교에 개인 물병을 가지고 다니도록 안내하는 것도, 쉬는 시간에 집에서 싸 온 건강한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부모회에서 열심히 만든 삼각김밥을 교문 앞에서 나누어주는 것보다 훨씬 소소하지만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일이다. 웰빙(well-being)은 잘 먹고 잘 마시는 건강한 습관에서부터 시작이다. 어쩌면 우리는 학생들의 웰빙을 위해 너무 거창한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건강은 이벤트처럼 잠깐 지켜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때부터 꾸준히 해 온 것이 습관이 되어 지켜져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엄마 아빠도 아침을 거르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도시락이 웬 말이냐는 말은 조금 접어두자. 더 일찍 잠들고 더 일찍 일어나 양질의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보다 간편한 방법도 많이 있다. 바나나, 귤, 요거트나 빵처럼 아이들이 집어 가기만 하면 되는 간식도 많다. 초등학교 5, 6학년이 되면 실과시간에 계란 삶는 법도 배운다. 전 날 저녁에 내일을 위해 감자나 계란을 직접 삶아 가져가게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생활 공부가 될 것이다.


더욱 고달프고 빠듯해져 가는 삶의 방식에 맞춰, 학교와 부모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더 잘 먹고, 더 잘 마실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건강한 습관은 어른이 된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건강한 습관들이 건강한 어른이 되게 하는 삶의 연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형적인 캐나다 초등학생의 '초간단' 도시락. 도시락이 꼭 거창하고 화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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