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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Feb 17. 2021

위험할 수는 있으나 보호자는 없어도 되는 아이러니

"혼자 등하교가 가능한 나이는 몇 살일까?"

대한민국 맞벌이 부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본 질문일 것이다. 흔히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맞벌이 부부에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온다고들 한다. 이른 하교시간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어린이집을 보냈지만, 초등학교에는 종일반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육아휴직을 하는 부모들도 많다. 그나마도 그렇게 휴직이 가능한 직장이거나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찬스를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복 받은 부모다. 결국 둘 중 한 사람이 직장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없다. 아이가 부모만큼 늦게 귀가하는 수밖에. 돌봄 서비스나 방과 후 활동을 신청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학원으로 돌려막기다. 부모는 그런 아이가 짠하다. 오로지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일명 '학원차 뺑뺑이'를 돌아야 하니 그게 미안하고 가여운 거다.


이런 복잡하고도 달갑지 않은 현실 때문인지, 등하굣길 도로 위에는 보호자 없는 아이들이 흔하디 흔하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초등 고학년은 물론이고, 저학년도 다수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몇 살부터 보호자 없이 도로를 걷고, 차도를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등하교를 하며 주로 걷는 곳은 스쿨존, 어린이 보호구역이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존재하는 이유는 어린이가 대표적인 교통 약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는 신체적, 인지적 기능이 성인에 비해 미성숙해서 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참 아이러니다. 특별보호구역을 만들어야 할 만큼 도로 위 어린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그런 어린이를 혼자 도로로 내 보낸다. 어린이가 혼자 길을 걷고 혼자 차도를 건넌다. '위험할 수는 있으나 보호자는 없어도 되는' 그런 모순적인 모양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탓하며 그 위태로움에 대해 너무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불법 노상주차나 적치물을 단속한다. 등하교 교통지도 도우미를 배치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스쿨존 규정속도 30이 커다랗게 적힌 형광색 덮개를 학생들의 책가방에 씌운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사고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어느 정도 위험을 인지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고학년이라면 모를까, 이것이 저학년 학생들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도로 위 위험한 것이 달리는 자동차뿐인가. 주차된 차량이 미끄러져 아이를 치고, 학원차에서 내리다 옷이 문에 낀 채 끌려가기도 한다. 게다가 아동 성추행, 성폭행 기사를 보면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아찔한 세상인데 말이다.


캐나다에 와 보니 어린이 안전 문제는 이 곳에서 독박 육아 중인 나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 아이가 적어도 만 10세가 될 때까지 집, 차 안, 도로 위, 어느 곳에서도 절대 혼자 있어서는 안 된다. 아주 잠시 잠깐이라도 이유를 불문하고 아동방임 신고감이다. 심지어 아이가 만 10-12세라 하더라도, 보호자가 1시간 이상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고 권장하고 있다.


그러니 만 10세 미만 학생들은 학교에서 집이 아무리 가까워도 혼자 걸어갈 수 없다. 보호자가 직접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야 한다. 학교 바로 건너편에 살던 지인이 2학년 자녀를 혼자 집으로 오게 했다가 담임교사의 경고 전화를 받았다. 대로변도 아니고 골목길 하나 건너면 바로 대문 앞인데도 말이다. 아이가 하교하는 모습을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었다고 변명했다가 팩트 폭행을 당했단다. 창문 너머로 엄마가 아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아이가 안전해지는 거냐고 말이다.


@thestar.com/yourtoronto/education


스쿨버스를 타더라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스쿨버스 정류장으로 아이를 데리러 나가야 한다. 나 역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낮잠 자는 둘째를 억지로 깨워 둘러업고 첫째 아이를 데리러 나가야 했다. 아무리 집이 가까워도, 부모가 나와있지 않으면 아이를 내려주지 않고 다시 학교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형제자매가 있어 함께 등하교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째가 만 12세, 아무리 빨라도 만 10세는 되어야 어른 없이 동생을 돌볼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위해 응급처치, 연령별 보육 방식,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 위생 및 안전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베이비 시팅 교육도 받는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 곳엔 맞벌이 부부가 없나? 많이 있다. 많은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 값을 치르고 있다. Before/After School(한국의 돌봄. 유료이고 비싼 편)을 보내고, 아이를 데리러 가 줄 사람을 구하고, 방과 후 아이를 돌봐 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여의치 않을 때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맡아 키우기도 한다. 이 곳에서도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굉장히 럭키(lucky)한 부모다.


물론 이렇게 한국보다 어린이 안전 관련 법이 훨씬 엄격한데도 이 사회가 굴러갈 수 있는 것은, 사회 전체가 가족중심 문화라 그렇다. 단절된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 비교적 쉽고, 부모 중 누구나 육아휴직을 보장받는다. 또 야근이나 회식이 없어 부모의 퇴근시간이 예측 가능하며,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3시 즈음으로 하교시간이 동일하다는 것도 한 몫 한다. 모든 것이 어린이와 가족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이다 보니 둘은 기본이고 셋, 넷도 낳나 보다. 아이를 낳으면 적어도 10년은 끼고 살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drivingtest.org


우리 가족도 머지않아 한국으로 돌아간다. 맞벌이 부모가 될 나 역시 달리 방법이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부탁하든, 돌봄을 하든, 하교 도우미를 구하든, 이도 저도 안 되면 학원으로 돌려 막든, 결국 내 아이도 보호자 없이 도로를 활보하게 될 것 같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참 우습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가 내 자녀 안전의 담보가 될 수 있을까? 캐나다에서나 한국에서나 똑같이 소중한 딸인데, 캐나다에서는 3시 땡 하면 매일매일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애데렐라' 엄마가 되고, 한국에서는 혼자 등하교하게 하는 쿨한 엄마가 되는 거다. 내 아이의 안전은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자꾸만 무언가를 핑계 삼고 싶다. 불안하던 마음이 '괜찮겠지'로 바뀌고 싶어한다.


"1학년인데 혼자 등하교할 수 있을까요?"

3월이 다가오면 한국 맘 카페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글이다. 돌봄을 신청했다 떨어져서, 하교 도우미를 못 구해서, 아직은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 등 사연이 다양하다. 엄마가 6개월 정도 휴직하고 등하교를 연습시키면 2학기 때부터는 혼자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는 조언이 댓글에 달렸다. '입학 전에 몇 번 연습하니 씩씩하게 잘 다니더라', '교통 지도하는 분들이 계시니 너무 걱정 말라'는 댓글도 있다. 어떤 사람은 전업맘이라 본인이 직접 데리고 다녔는데, 2학기가 되니 오히려 아이가 친구들이랑 다니고 싶어 한다며 염려 말라했다.


그렇게 남들이 사는 대로 나 역시 그 아이러니한 방법을 택하게 될까? 캐나다에서보다는 훨씬 어린 나이에, 훨씬 가뿐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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