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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Apr 11. 2021

다문화 교실, 너희들의 다름이 특별함이 되려면

“까만 애랑 놀지마.”

국내 1호 흑인 혼혈 모델, 한현민 군이 어릴 적에 들었야 했던 말이다.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학생의 비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데, 다문화 가정 학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나 보다. 나 역시 많은 다문화 가정 학생을 가르쳐보았다. 말이 어눌해서, 생긴 모습이 달라서, 심지어 어떨 때는 엄마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들과 동떨어져 지내는 모습을 보곤 했다. 학교 안에서 점점 더 다양해지는 서로 다름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캐나다야말로 온통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다. 캐나다에서 다양성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큰 줄기와도 같다. 세계 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학교에도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있다. 모두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뿌리의 국적을 가졌다. 인종에 따라 피부색도, 머리색도 제각각이다. 모두가 영어로 말하지만 저마다의 억양을 가졌다. 


국적, 인종, 언어뿐이겠는가. 엄마와 아빠가 만든 가족도 있지만 두 명의 엄마가(혹은 두 명의 아빠가) 이룬 가족도 있다. 종교에 따라 히잡을 쓴 친구도 있고, 신념에 따라 채식을 하는 친구도 있다. 잠깐 살다 갈 유학생부터 영주권자, 시민권자까지 비자와 신분 상태마저 다르다. 심지어는 집에서 주로 먹는 음식에 따라 아이들의 체취까지, 온통 다름 투성이다.

 

‘Our difference makes us special.’ (다름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캐나다의 많은 초등학교에서 마치 슬로건처럼 심심치 않게 발견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볼 때마다 생각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다름이 놀림거리도 상처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까? 다름이 어떻게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까?


캐나다 초등학교 벽에 걸린 문장.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딸아이가 캐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이는 점점 자신과 다른 타인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 라마단이 끝났대. 나도 Nusaiyba처럼 헤나 해 보고 싶어.”

“오늘 Mia 생일이어서 스페인어로 생일 축하노래 불러줬어. 들어볼래?”

“엄마, 오늘 Jeamar가 자메이카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서 학교에 안 왔어. 자메이카가 어디야?"


아이가 다름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데는 교사의 역할이 컸다. 교사가 주말에 아시안 식당을 다녀왔다며 젓가락 사용할 줄 아는 학생들에게 너무 멋지다고 말해준다. 다 같이 스페인어로 생일 축하노래를 배워서 생일을 맞은 에콰도르 친구에게 불러준다. 인도 학생이 헤나를 하고 오거나 흑인 학생이 드래드 헤어를 하고 오면 너무 예쁘다며 관심을 표현한다. 설(음력 새해)이 되면 한국 친구들에게 세배하는 법을 배우고 중국 친구들을 위해 빨간색 장식품을 만들어 교실을 꾸미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 대한 교사의 폭넓은 이해와 관심이 학생들에게도 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타인에 대한 궁금증이 점차 자신에 대한 궁금증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한국을 궁금해했고 아시아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엄마, 친구들이 나랑 Raymond(중국인 친구)랑 닮았대.”

“엄마도 BTS 알아? 한국말로 노래하는 사람이래.”

“엄마, 우리는 South Korea야, North Korea야?”

아이는 호기심을 하나하나 해소해 가면서 남과 다른 나는 누구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다름에 대한 관심이 결국 나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Our differences make us special.(다름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캐나다 초등학교에 붙어있던 이 말은, 우리의 서로 다름은 오히려 나를 뚜렷하게 만들고, ‘뚜렷한 나’들이 모여 있는 '우리'가 다채로워진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딸아이가 친구들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재밌어했던 것은 자신의 다름을 특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교실 속에서는 너와 다른 내가 이상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해지는 경험을 해 왔으니 말이다.


캐나다에 살다 보면 외국인인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를 보는 상대방의 눈빛이 어색하다는 걸 느끼면 그때부터는 내 마음의 문도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려와 관심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다. 배려가 지나쳐 자존심을 깎아내리지도 않고, 관심이 지나쳐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그가 가진 관심에 진정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문화학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요즘 사회, 요즘 학교에 그런 부모, 그런 교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문화 교육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각 국 요리를 먹어보고 전통의상을 입어보는 이벤트성 관심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학생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마음은 매일매일 교실에서 만나는 교사가 일상으로 보여주는 진정성 있는 관심이고, 우리 부모가 차별 없는 언어와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짜 마음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다름이 특별함이 되는 교실이 되고, 다름이 특별함이 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I am not better than anyone. (나는 다른 누구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니야.)

 Nobody is better than me.(나보다 더 나은 사람도 없어.)

 We all special.(우린 모두 특별해.)


어디선가 보았던 세 문장. 우리 반 교실 거울에 붙여두고 싶은 문구다. 다름은 우리를 헝클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발견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 모두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서로 다른 피부색, 종교, 언어를 가졌지만 서로 다르기에 우리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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