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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r 16. 2021

비타민D보다 결핍인 것

요즘은 비타민D 영양제가 필수처럼 여겨지는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인이나 학생이나 실내에 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 다른 건 몰라도 비타민D만큼은  먹어야 한단다.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는 비타민D보다  결핍인 것이 따로 있다. 비타민D 부족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 바로 , 휴식이다. 우리는 진정 나를 풍족하게 하는 쉼의 방법을 알고 있을까? 부족한 비타민은 영양제로 보충한다지만   모르는  병은 꽤나 고질적이다.


캐나다 사회는   쉬는 사회다. 그래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하다. 주말에상점과 쇼핑몰이  일찍 문을 고, 각종 공휴일에는 거의 문 연 곳이 없으니 미리 장을 봐 놓지 않으면 난감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한국 생활을 생각해보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쉬어야 하는 시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같기도 하다. 직장에서도 정해진 시간보다  근무하는 일은 없다. 그건 오히려  시간에 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기회를 뺏는 일이다. 내가 쉬어야 남이 일할  있는 거다.


그렇게 잘 쉬는 그들은 도대체 무얼 하며 쉴까? 이 곳에 살다 보면 집 앞에 나와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 앞 의자에 앉아있다. 은퇴한 노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젊은 사람도, 아기 엄마도,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아기와 함께 밖에 나와 있다. 주택이 아니어도 똑같다. 1평도 안 되어 보이는 아파트 발코니에도 의자가 한두 개씩 놓여있다. 뷰가 좋은 것도 아니고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만 보이는데도 발코니에 앉아 햇빛을 받고 바깥바람을 쐰다. 그게 그들의 쉼의 방식인가 싶기도 하다.


조깅이나 자전거 타기는 말할 것도 없다. 남녀노소는 물론 웬만한 날씨도 가리지 않고 즐긴다. 주말이면  가족이 각자 자전거 하나씩 타고 달리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어린 아기가 있는 집도 아빠 자전거 뒤에 캐리어를 달거나 전용 유모차를 연결시켜 함께 라이딩을 즐긴다. 주말이면 즐을 맞추며 시간을 보내는 중학생도, 친구들이랑 인라인 스케이트 타러 가는 고등학생도 캐나다에 와서 처음 봤다. 엄마들 모임에서도 보드게임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다들 취미가  많다. 내가 즐기던 취미를 들고  다른 엄마들과 함께 하는 거다. 어느 날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길래 당황했다. 학생  생활기록부에 쓰기 위해 억지로 생각해  음악 감상, 독서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나는  하며 쉬는 걸까. 나는 무엇으로 다시 달릴  있는 에너지를 얻는 걸까?


@unsplach.com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가지 대답할  있는 학생이  명이나 될까? 본업인 공부 말고, 몸과 마음이 쉬게 하며 시간을 보낼  있는 .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과 같다. 차가 다시 달리기 위해서는 주유소에 멈춰서 기름을 넣어야 하듯이, 잠시 멈추어 몸과 마음이 온전히 쉰다고 느낄  있는 그런  말이다. 온라인 게임이나 유튜브는 지금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쉼은 아니다. 중독성이 있어 스스로 멈추기가 어려운 것은 진짜 휴식을 주기 어렵다. 다시 달려 나갈 힘을 준다기보다 오히려 멈춘  자리에 고립되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들(Doodle)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딱히 목적 없이 끄적거리는 낙서라는 뜻이다. 내가 파견 갔던 캐나다  초등학교에 두들 시간 즉, 낙서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다. 각자 두들 공책을 꺼내와 원하는 곳에 자유로운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책상에서 혹은 교실 바닥 카펫 위에 엎드려 끄적거리도 했다. 이제 보니 캐나다 학교에 딸을 보내고부터 모든 레깅스 무릎에 구멍이 나는 것이  이런 이유였나 보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조용한 수다를 떨며 혹은 혼자서 조용하고 자유롭게 십여분 정도 두들을 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쉼의 시간을 마련해주고 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캐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휴식이 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15 정도 전교생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쉬는 시간이 있다. 리세스(Recess)라고 불리는  시간은 한국의 중간놀이 시간과는 약간 다르다. 한국 학교에서는 쉬라고 만들어 놓은 중간놀이 시간에도 전교생이 각을 맞춰 체조를 했다. 중간놀이 시간마저 하나의 일이고 활동이었다. 체조가 끝나고 들어와서는 지친 학생들을 달래서 부랴부랴 3교시를 시작하기에 바빴다. 캐나다 학교의 리세스 시간은  그대로 자유롭게 쉬는 시간이다. 교사  세명이 안전을 위해 감독할 , 교사도 쉬고 아이들도   있는 시간이다. 삼삼오오 수다를 떨거나 공놀이를 하거나 그네를 타거나 아니면 그저 혼자 의자에 앉아서 쉬는 아이들도 있다. 영하 20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 추우나 더우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예외 없이 전부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만이 리세스 시간의 유일한 룰이다. 휴식도 수업처럼 학교 생활의 하나로 세팅  놓은 것이다.


원하는 방식대로 쉬고 있는 캐나다 초등학교 리세스(Recess) 시간


한국에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드디어 쉼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도 쉴 줄을 모르니 '쉬는 것도 일처럼 생각하고 쉬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너무 쉼을 못 배웠다.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근성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지만 우리는 모두 멈추지 않으면 달릴 수 없는 인간일 뿐인데 말이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쉬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교사와 함께, 부모와 함께 진짜 쉼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쉬는 캐네디언 어른들에게 리세스 시간을 보내는 캐네디언 어린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교가 쉴 줄 아는 어른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증거니까. 학교 교육이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의미 있는 교육이다. 한국 학생들에게 취미가 없고 그래서 진정한 쉼이 결핍된 것은 어쩌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풍족한 쉼에 대해 배우고 경험했다면 낙서도 하고 퍼즐도 맞추고 그러다 밖으로 나가 조깅도 하고 자전거도 타지 않았을까? 그러다 나중엔 정말로 햇빛 아래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타민D만 잔뜩 먹는 진정한 쉼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캐나다 사람들이 자주 주고받는 말이 있다. "Go get some fresh air." (나가서 바람  쐬고 .)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지치고 피곤한 사람에게, 기분이 별로인 사람에게 그들이 건네는 해결책이다. 그들은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진짜 휴식이  거라고 믿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것이 다시 달려 나갈  있도록 몸과 마음을 풍족하게   거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캐네디언들이 우리보다 휴식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라면서 쉬어 버릇했기 때문에 그렇다. 초등학교 때부터 온전히   있도록 마련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쉬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 시국 때문에 딸아이가 일 년째 온라인 수업 중이다. 잠깐 쉬는 시간인데 친구 절반이 약속이나   밖에 나갔다 왔단다.  신기하고 건강한 사람들이다. 한국에 있는 우리 아이들도 휴식을 배워야 한다. 몸도 마음도 머리도 다시 시작할  있게 만드는 진짜 쉼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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