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사랑 Feb 25. 2021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벌거벗지 않도록

김영하 작가가 요즘 학생들의 언어습관 중에 '짜증 난다'라는 표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감정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것을 모두 뭉뚱그려 '짜증 나'로 표현한다고 말이다. 엄마가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아 서운한 것도 짜증 나, 나보다 인기 있는 친구에게 느끼는 질투심도 짜증 나, 노력한 만큼 성적이 안 나와 속상한 것도 짜증 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은 감정인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를 둘러싼 인간관계와 주변 환경은 복잡해진다. 그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폭도 급격하게 넓어진다.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짜증 나' 한 마디로 규정해버리는 것은 마음 들여다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자기 성찰을 통해 자아형성의 꽃이 피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이다.


감정인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감정 해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이름을 짓는다고 생각해보자. 그것만으로도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선명해진다. 미움은 용서로, 열등감은 인정으로, 서운함은 포용으로. 그래서 감정의 해소는 마치 공간의 이동과 같다. 레드 존에서 옐로 존으로, 옐로 존에서 그린 존으로. 감정이 공간에서 공간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감정을 인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바람직하게 한 칸 옮겨가기 위한 의지적인 행동이 요구되는 것이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주인공 소피는 엄마와 언니 때문에 화가 잔뜩 나,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달리다 도착한 곳은 어느 숲 속. 숲 길을 걷다 보니 흥분이 가라앉고, 눈물이 찔끔 나온다. 눈물을 닦고 나니 나무와 바위와 고사리가 눈에 들어오고, 새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나무 위에 앉아 바람을 느끼고 일렁이는 물결을 보는 사이 소피의 화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혹은 적어도 폭발하는 레드 존의 감정을 옐로 존으로라도 옮겨가기 위해서는 바람직하고 구체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피'처럼 달리고, 숲을 걷고, 눈물도 찔끔 흘려야 한다. 그 전략의 유무가 감정을 추스르냐, 추스르지 못해 벌거벗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교사들은 감정 추스르기가 필요한 자녀 또는 학생들에게 제안할 수 있을만한 구체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1학년부터 감정이 널뛰는 사춘기 학생들까지 모든 아이들에게 마찬가지다. 학교는 다양한 갈등관계가 존재하는 곳이다. 그 속에서 마주하는 낯선 감정들이 바람직하게 표현되고 처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감정은 쌓이고 쌓이다 결국 터지게 된다. 추스르지 못해 벌거벗게 되는 것이다. 


캐나다 초등학교 복도에 놓인 흔들의자들. 마음을 다스리는 공간이다.


캐나다의 한 학교에서는 복도 곳곳에 흔들의자를 두는 것을 그 전략으로 삼았다. 특히 그 학교는 감정이 기복이 심한 자폐나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학생이 많은 학교였다. 그 학교에서는 흔들의자에 앉아 의자를 흔들거리는 행위가 '소피'가 숲을 걷는 행위였다. 흔들의자를 앞뒤로 흔드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흥분이 가라앉는다. 복도에 걸려있는 사진이나 작품에 눈이 가고, 교실 속 선생님과 친구들의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그러다 보면 흥분했던 감정이 차분해진다. 감정이 진정되면 마음속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쉬워진다. 교사는 그제야 아이의 눈을 맞추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어떤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금세 까르륵 웃으며 교실로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다.


위 학교에서 사용한 흔들의자 전략 외에도, 1부터 10까지 천천히 크게 심호흡하기, 스피너나 슬라임 같이 손에 쥐고 놀 수 있는 피젯 토이 사용하기, 낙서나 컬러링북 색칠하기, 모래시계를 뒤집어서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쳐다보기, 촛불이 꺼지지 않고 흔들릴 만큼만 천천히 열 번 불어보기. 푹신푹신한 쿠션 끌어안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등. 모두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기분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권했던 방법이다. 어떤 교실은 이 모든 것을 모아 피스 코너(Peace corner)를 만들어두기도 했다.


교실 한편에 마련된 peace corner ⓒHeidi Malloy(좌) ⓒNicile Roesch(우)


그런데 이때 교사나 부모가 알아두어야 할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를 기억하는 것이다. 가끔 아이의 감정에 오히려 교사나 부모가 상처 받는 경우를 본다. 괜찮지 않은 아이의 감정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봐야 한다. 아이의 감정은 아이의 것이기에 아이가 지금 괜찮지 않아도 나는 괜찮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물음표를 갖는 어른을 찰떡같이 알아본다. 그리고 입을 닫아버린다. ‘쟤는 왜?'라고 생각하는 어른에게는 안전함을 느낄 수 없다. 교사와 부모는 너른 마음으로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적절히 처리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은 감정도 괜찮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모든 감정을 존중해주되, 표현방식에는 한계를 정해주어야 한다. 모든 감정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지만 감정의 표현방식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외로움 때문에 자해를 하는 것마저 인정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어른은 늘 아이에게 테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테두리 안에서 가한 것을 하되, 그 감정이 재빨리 옐로 존으로, 그린 존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전략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감정을 인지하고 추스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레드 존에서 옐로 존으로, 옐로 존에서 그린 존으로 감정을 옮겨갈 수 있는 전략이 있다는 것은 아이 마음에 힘을 길러준다. 마주치는 다양한 삶의 스트레스 상황을 보다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부모와 교사의 역할은 전략과 테두리를 제공해주고 한 걸음 떨어져 잠시 기다려주는 것이다. 또 아이들보다 한걸음 먼저 단단하고 정돈된 감정으로 안전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짜증 나'만 연발하다가, 쌓이고 쌓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벌거벗고 마는, 그런 아이들이 없도록 말이다.



이전 08화 비타민D보다 결핍인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