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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r 01. 2021

학교 문단속

몇 년 전 사용했던 1층 교실이 학교 건물 우측 출입구에 바짝 붙어있었던 적이 있었다. 상시 개방된 문이라 그곳으로 자주 학부모들이 드나들었다. 학교 건물 중앙에 외부인 출입을 위한 현관이 있기는 했지만, 교무실을 지나치는 것도 부담스럽고 방문객 명부 작성도 번거로우니, 얼른 볼일만 보고 후딱 나가려는 궁리였을 거다. 옆문을 통해 드나드는 것은 학부모만이 아니었다. 가끔 민원인들이 들어와서 수업 중인 교실 창문 너머로 교무실이나 행정실이 어디냐고 묻기도 했다.


문제는 그 사람이 학부모든 민원인이든 나로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외부인이라는 거다. 불안했다. 나쁜 마음을 먹은 누구라도 들어온다면 나와 우리 반 학생들이 제일 먼저 타깃이 되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서울시 교내 초등학생 인질극 사건, 전남 심신 미약자의 교사 성추행 사건, 세종시 교내 괴한 흉기 소동 등 외부인 학교 침입으로 인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했다. 현재 내가 경험한 학교의 외부인 출입관리 시스템을 생각해본다면, "그래, 충분히 일어날만한 일이지."가 교사로서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캐나다 거주 경험을 생각해보면 그 넓은 땅덩이 안에서도 모든 학교의 교내 출입 시스템이 동일하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때그때 메운 땜질공사가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고 설비하여 잘 지어진 집처럼 딱딱 들어맞는 출입 매뉴얼이 구축되어 있었다. 


출입 매뉴얼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안전을 위해 해 왔던 것, 바로 문단속이다. 교내 출입 시스템을 문단속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것이 가정집 현관문 문단속하는 것처럼 간단한 원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은 늘 잠가놓되, 인터폰으로 신원이 확인되면 열어주기'. 


문단속 안 되는 집이 도둑의 타깃이 되는 법이다. 외부인 출입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캐나다 내 모든 초등학교 건물 출입문은 늘 잠겨있다. 등하교 및 중간놀이시간 등, 정해진 시간 외에는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없다. 대신 건물 안팎으로 이루어지는 수업활동 및 재난대응을 위해 안에서 밖으로는 열리게 되어있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는 중앙 출입구다. 중앙 출입구에서 벨을 누르면 교무실에서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준다.


여기서 한 끗 다른 것은 중앙 출입구 바로 앞에 교무실 오픈 창구가 있다는 것이다.(아래 사진 참고) 중앙 출입구를 향해 뚫려 있는 오픈 창구 혹은 유리로 된 창구에는 학교 비서가 상주한다. 누구든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신원 및 방문 목적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간혹 한국 학교 중에 외부인의 중앙 출입구 출입을 독려하기만 하고 통제하지 않는 학교들이 있다. 교무실 및 행정실의 창문과 문이 꽁꽁 닫혀있으니 외부인이 중앙 출입구로 들어와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외부인이 알아서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방명록을 쓰고 방문증을 받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제대로 된 문단속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초등학교 교무실 오픈 창구. 학교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관리할 수 있도록 중앙현관을 향해 틔여 있다.


학교는 개방적인 곳일까, 폐쇄적인 곳일까? 우리 사회에서 학교는 누구나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도록 늘 열려있는 곳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학교는 학생 안전을 위해 외부 위험요소가 철저하게 통제되어야 하는 곳은 맞지만 완전 폐쇄가 답은 아닌 곳이다. 학교는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지역 커뮤니티에 학교 강당이나 운동장을 개방하기도 하고 방과 후에는 교실을 개방하여 방과 후 교실 및 돌봄 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민원인, 외부업체, 각종 강사 등 외부인 출입이 끊임없는 곳이다.


결국 학교에는 개방과 폐쇄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출입을 전면 통제하는 곳도 아니고, 현관문 열어놓고 아무나 들어오세요 하는 곳도 절대 아니다.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학교 '건물'의 문단속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학교 교문 앞을 지키는 학교 보안관이 있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대부분의 학교 출입구는 교문이 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야 하는 한국 학교 특성상 교문 앞을 지키는 학교 보안관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외부인의 신원과 방문 목적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가 되기 쉽다. 학교 보안관이 있다는 이유로 외부인이 교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동선이 자유로워지는 것도 문제다. 민원인이라면 행정실, 학부모라면 교무실 등 교문 출입보다 건물 출입에 제한이 필요하다.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을 낯선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학교 구성원에게는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모든 학교가 하나의 일괄적인 보안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문은 잠그고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 열어준다'는 이 단순한 문단속을 어렵게 하는 것은 동일한 매뉴얼 없이 각각 다르게 설계된 학교의 아우트라인도 문제다. 어떤 학교는 교문에 후문에 쪽문까지 있고, 어떤 곳은 학교 안에 동떨어진 건물이 여러 개라 건물 출입통제가 어렵다. 또 누군가 건물 안으로 들어와도 문만 닫아놓으면 전혀 알 수 없도록 설계되어있는 교무실과 행정실도 문제다.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실현 가능하고, 또 지속 가능한 학교 문단속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학교 구성원들이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흉기소동이 있었으니 금속탐지기 설치를 고려해야 한다던지, 졸업증명서 뗀다 해놓고 인질극을 벌였으니 민원서류 발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땜질식 대응책은 난감하다. 학교 건물은 다 개방되어 있는데 교문 앞을 지킬 뿐인 학교보안관을 2인 1조로 확충한다거나, 건물 현관에 지문인식 자동 잠금장치를 설치하겠다는 멋들어지기만 한 대응책도 마찬가지다. 과연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인지, 돈은 돈대로 들고 잉여인력이 되거나 관리가 어려운 애물단지만 되는 해결책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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