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학교에서 학부모를 초대하는 가장 큰 행사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다. 한국의 학예발표회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일 년 중 가족들 앞에서 무대에 서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첫 아이가 캐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드디어 크리스마스 콘서트 날이 왔다. 아이의 첫 무대는 엄마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남편도 어려운 시간을 내어 아이의 첫 무대를 보러 왔다. 일찌감치 학교 강당에 도착해서 동영상 찍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입장 때부터 엄마를 찾는 딸에게 연신 손을 흔들어가며 동영상 녹화버튼을 눌렀다. 딸아이의 무대가 끝나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편과 마주 보고 동시에 헛웃음을 지었다. “끝난 거야..?” 찍은 동영상 길이를 확인해보니 2분이 채 되지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캐나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 불가능한 것은 안 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 캐나다는 역시나 이런 곳이었다.
한국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학예발표회를 준비하는 것은 굉장히 큰 업무 중 하나였다. 이 업무를 총괄하는 교사는 무대 및 음향시설, 촬영, 사회, 무대 장식, 작품 전시, 무대의상, 음악, 환경 조성 등 준비해야 할 것 많았다. 담임교사도 마찬가지다. 무대를 구상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 연습시간을 확보하고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 가며 완벽해 보이도록 연습을 시켜야 했다. 어떻게 보면 일 년 중 가장 교육과정을 침해하는 행사가 아니었을까? 사실 학예회에서 선보이는 멋진 무대들은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교사들이 해 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학예발표회가 아닌 '학습성과'발표회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막상 이전에 해 왔던 멋진 무대 대신 음악시간에 배운 리코더 합주를 하고, 미술 시간에 배운 작품을 전시하는 방향으로 가려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무산되곤 한다. 결국 학예발표회 무대를 위해 많은 시간과 예산과 노력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캐나다 학교의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봤을 때는 뒷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한국 학예발표회에 비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무대 장식, 전문 음향시설, 무대의상이 없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각 반에서 준비한 공연이 한국 선생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전혀 완성도가 없는, 그야말로 성의 없는 공연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총출동 한 가족 모두, 하나 같이 흘러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 없는 얼굴이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와 고작 2분도 안 되는 소박한 순간을 열정적으로 촬영을 하기도 한다. 왠지 허무했다. 학교 교육과정을 침해해 가며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예산을 들여 화려하게 꾸며내지 않아도, 자기 자식이 무대에 선 모습. 그거 하나면 되는 거였는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캐나다 초등학교로 출근했지만, 콘서트 연습하는 모습을 본 것은 딱 한 번이었다. 그마저도 프렌치 이멀젼 학급에서 프렌치로 영화 주제곡을 부르길래 그냥 수업을 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딱히 안무랄 게 없으니 책상을 뒤로 밀어서 동선을 맞추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었다. 수업시간에 신나게 몇 번 불러보고 아이들이 제안하는 몇 가지 율동도 가미했다. 드레스코드는 목욕가운이었다. 각자 준비한 목욕가운을 입었지만 입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물론 자신의 개성대로 샤워캡을 쓰거나 목욕용품을 소품으로 준비한 학생들도 있었다. 주어진 드레스코드에서 얼마만큼 어떻게 준비할지는 학생 각자의 몫이었다.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프렌치 이멀젼 학급 차례가 오자, 다 같이 나와서 연습했던 노래를 불렀다. 자기만의 흥에 맞춰서 몸을 들썩들썩하는 아이들도 있고, 가만히 서서 멀뚱멀뚱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몇 번 맞춰본 율동도 제각각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것 역시 아이의 몫이니까.
이제 학교 행사에도 철학이 필요해 보인다. 학예발표회는 무엇이고 왜 하는 걸까? 일 년에 한 번 아이들이 무대에 서서 끼를 발산하고, 학급이 한 무대를 함께 준비하면서 소속감을 기르고 연대감을 느끼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학교라는 공간에서 예산과 시간 그리고 교사의 에너지를 더욱 집중해야 하는 곳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행사는 조금 허술하더라도 보다 간소하게 가면 어떨까. 일 년에 한 번 아이들에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내 자식을 보면서 미소를 감출 수 없는 것도, 공연과 무대의 완성도랑은 아무 상관없는 것 같다.